종로 3가역 . 밀교의 로큰롤
Deep Blue 130






의정부행 전철이 서고 잿빛 봄 코트의 여자가 내린다
프랜취블루 실크 스카프의 긴 목선과 여린 화장기의 그녀는 ...
1호선적인 직선미와 국철풍의 권태미로 담담하게 ....
어느 계절이 와도 가을 여자로 남아있을 것 같다

그녀가 수원 혹은 인천발을 타고 왔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승강장에서는 누구라도 흘러온 줄기를 묻지 않는다
화살표를 따라 갈아타든지 바람을 따라 빠져 나갈 뿐 ....
그녀는 벽에 붙어있는 현재 위치의 빨간 점을 본다



건너편 승강장에서 아디다스 풀오버의 삐끼가 내린다
출근시간까지 그는 자신의 구역 지하를 순항해본다
코에 은구슬 박은 소녀가 머리를 흔들며 스쳐가자
삐끼는 잠깐 ... 오늘의 메뉴들을 머리속에 정리해본다

환승 계단에 토플 책을 든 퀼트머플러 여학생이 내려간다
난간에서 전경이 목을 빼고 내려보다 옆구리 방망이를 꼭 쥔다
바람에 퀼트머플러가 매직 카펫처럼 펄렁인다

월드컵 숖 앞에서 초록 주름치마 여자가 기다림에 지친다
피파가 공인해줄만한 그녀의 불행에 바람이 지나간다
구멍난 스타킹의 여고생이 종이가방을 들고 추위에 떨자
조선일보 보던 아저씨가 오른쪽 눈으로 흘겨본다










벽돌벽 통로에 산타나의 '신스 슈퍼네츄럴'이 가늘게 흐른다
스피커 따위의 음원이 전혀 없는 길다란 통로 ...
맞은편에서 가을여자와 삐끼가 다가오고 ... 낮은 목소리의
주문을 나눈다 . 붉은 벽돌 하나마다 다짐이 울리고 ...
모르타르 선처럼 굳은 표정으로 그들이 헤어진다

5호선 마천행 전철에서 기타를 맨 남자가 내린다
맞배 천정아래 희끗한 갈기머리 휘날리는 그는 ....
늙은 라커라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헛디딘 무사같다
그와 스치던 중학생의 리시버에서 테크노가 느닷없이
산타나로 바뀌고 ... 놀란 중학생이 돌아본다

세개의 다른 승강장에서 사람들은 어렴풋한 리듬의 소리를
듣고 잠깐씩 고개를 돌리다가 ... 가늠할 수 없는
생각들에 서로를 마주보기도 한다 .



같은 시간 . 역에서 한블럭 떨어진 지하 레코드숖에 ...
산타나가 신랄하게 퍼진다 . 누구도 노래가 바닥을 타고 역까지
흐른다는걸 모른다 . 땅 아래에서 모든 울림은 통한다
음악이 '스테어웨어 투 헤븐'으로 바뀌고 ....

지상에서 삐끼가 건널목의 루즈삭스 여자들을 붙잡고
신이 사라진 땅 위에서 물의 의미를 전해주지만
어느 여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 흐린 하늘을 보며
팔 벌리고 빙글빙글 돌던 ... 그가 줄담배 피기 시작한다

맞은편 건널목에서 가을여자가 설문지를 돌린다
'휴대폰 전자파를 느끼십니까' 라는 물음이 구겨지고 버려진다
모처럼 설문에 대답한 전경에게 그녀는 하늘을 가리킨다
"하늘은 지상의 거울이랍니다 "










삼일문 앞에서 태극기 파는 여인이 하늘을 보다가 짐을 싼다
다리 없는 남자가 플라스틱 바구니를 끌며 기어간다
그의 앰프에서 '드 메시아 윌 컴 어게인' 기타음이 증폭된다
토정비결 천막이 펄럭펄럭 바람에 날린다

파출소옆 공원담 골목길에 들어온 기타를 맨 무사가 .....
뒤집힌 쓰레기 리어카옆에서 술판 벌이는 남자들 틈에 앉는다
빨간 모자에 막자란 털 남자가 호스트이다
이빨이 열세개나 없는 그가 사는 이유는 ... 그 때문에
정신병원에 가있는 여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 한다

"새끼가 애비를 패고야마는 세상이야"
나직히 외치는 빨간모자의 리어카에 쌓인 옷가지를
지나가던 남자가 눈치를 보며 뒤적인다
파자마블루의 에쿠스가 한대 골목길로 들어서지만 ....
술판의 어느 남자도 꼼짝않고 길을 내주지 않는다

화제가 중앙아시아 초원에 떨어진 폭탄으로 바뀌고 ...
어둠이 내리기전 빈 소주병이 한다스를 넘어간다
구식 전투비행모 남자가 무사와 함께 일어서자
빨간모자는 슬픈 눈빛으로 그들을 배웅한다
"하늘과 땅이 너무 멀어졌어 "



인사동 입구 노천무대에서 소매가 넓은 까만 쉬폰 자켓
남자가 플룻을 분다 . 스피커에서 흐르는
제트로툴의 '마이 갓' 기타에 솔로를 붙이지만 ...
객석에는 검은 고양이 한마리 뿐이다

마이크를 타고 격한 플룻의 마디가 거리에 흐르고 ...
팔자가 꼬이는 여자가 아홉번째 피어싱을 결심한다
공사중인 옛 극장에서 망치 하나가 철골더미 아래로 추락한다
요리학원 견습생이 앞치마를 걸친채 한층 위 혈액원에서 헌혈한다
반죽 묻은 팔뚝에서 양념 같은 새빨간 피가 솟는다

피맛골 여관방에서 저녁식사전 불륜중이던 커플이 결합을 풀고
벽을 더듬으며 .... 불연듯한 존재감을 느낀다
술취한 노인이 친구 노인에게 국민은행을 가리키며 ...
저 케이비란 술집으로 가자고 한다
친구 노인은 노란 상호 앞에서 한참동안 망설인다

플룻을 불던 남자가 노천무대에 쓰러지고 ...
골동품 봉투를 든 사람들이 그의 바구니에 동전을 던져준다
검은 고양이도 객석을 떠난다



낙원 상가 퍼쿠션 가게에서 대머리 남자가 드럼을 친다
불이 꺼져가는 상가의 통로에 찰박이는 물결로 리듬이 퍼진다
3층 데크에서 선생 김봉두가 123 카바레 앤지와 스텝을 밟는다
한무리의 학부모가 화물 승강기에서 내린다

한산한 주차장 파자마블루 에쿠스에서 늙은 귀부인이 나온다
낡은 인형을 들고있는 그녀의 검은 안경이 반짝인다
삼십년전 이 동네의 어린 창녀였던 그녀 .....
인형의 귀에 낮은 주문을 속삭인다 . 순찰중인 패트롤카 램프 빛이
귀부인의 얼굴을 한번은 붉게 한번은 푸르게 물들이고 지나간다

1500원 해장국집에서 은귀걸이 근육질 남자가 ...
나무탁자를 울리는 리듬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식당 안에는 테이블마다 한사람씩 남자들이 뚝배기의 열기에
고개를 숙인채 경건하게 밥을 뜨고 ... 하나 된 저녁식사에
먼데의 북소리가 국물에 잔물결을 이룬다



네거리에서 삐끼는 여전히 뿌리침만 당하고 ...
그의 줄담배 연기 퍼져가는 길건너에서 가을여자가 취객에게 ...
한번 벌어진 각은 되돌릴 수 없는 우주의 논리를 설명하자
취객은 ... 그건 섹스후의 관계와 같다며 끄덕인다
냉소와 거부와 외면이 신호등을 따라 네거리를 오가고 ...
빨간 모자 남자는 술집마다 문전에서 쫓겨난다

하나의 불빛으로 남은 악기상가 퍼쿠션 가게에서
무사의 기타 .. 전투비행모의 베이스 .. 대머리의 드럼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다 . '마이 스윗 로드' ... 경비 노인이 시타를 치고 ...
은귀걸이가 코러스를 깐다 . ..... 하레 크리슈나 .....



한복집 진열장 앞에서 빨간모자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유리안의 마네킹이 비단 치마폭을 펴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다
건널목의 삐끼가 코러스를 맞추며 .... 명함을 하늘에 뿌린다
나이트클럽 '샤먼' 이 은조각처럼 흩날리고 ...
삐끼가 하늘을 향해 두팔을 벌리고 빙글빙굴 돈다

낙원상가 아랫길로 진입하던 차들은 잠깐 멈춘다 . 경적도 없이 ....
운전자들은 환청 같은 노래와 수육집들의 고기머리를 바라보며
제물 ... 제단또는 순교 따위의 단어를 떠올리고는
핸들을 놓고 가슴에 손을 모으거나 ... 묵상을 한다

핑크 네온만 남은 버거킹 4층 스피커에 같은 노래가 이어지고 ...
가을여자 홀로 손뼉을 치며 코라스를 바친다
벽에 붙어있던 먼로와 헵번이 미소짓고 ....
통큰 창으로 밤하늘에 지상의 빛들이 하나씩 박힌다
겨울여자 ... 어두운 창가에서 눈물 흘린다



지하역에서 ... 1 3 5 호선 전철의 신호음과
바퀴와 레일과 바람이 지상의 노래와 코드를 맞춘다
아니 .... 궂이 의미의 순서를 찾으면
지하의 리듬에 지상이 멜로디를 붙인다

하늘은 지상의 거울이며 ....
지상은 지하의
메신저다









2003 . 4. 21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