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역 . 은박지 바람에 날리고






마지막 술꾼이 역원에게 끌려나간 ... 빈 승강장 ... 어둠에 묻혀가고
구로역착 막차에 불이 꺼지고 .... 차고로 들어오고 있다
오늘도 긴 하루였어 ....
유난히 꿈 많은 십량 전철의 과묵한 일번 차량이 기지개를 피고
심드렁한 마지막 신호등에 손 흔들어준다 ...


야간 백화점에 갔다온 아이들은 옷봉투를 끼고 차 끝에서 잠이들지 ....
나른해진 객차들이 하루의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멋진 안개 파랑 주름치마를 사온 아이가 있었어 .... 그 아이는
졸려서가 아니라 ... 못사고 남아있는 옷 꿈을 꾸려고 잠에 빠졌지 ....
그리고는 옷봉투를 빠트리고 ... 내리고 말았어 ....
앞자리에서 졸던 .... 사파리 모자가 종점에서 그 봉투를 들고 나갔어

꿈을 하나 꾸면 다른 꿈 하나를 잃어버리지 ....
나는 난장이 여자와 이쁜 딸을 봤어 ...

난장이 엄마는 딸에게 공주처럼 레이스가 많이 달린 치마를 입히고
지하철 갈아타기를 가르키려고 역에 나왔지 ....
용산행 차를 타려는데 ... 딸이 계단을 먼저 내려와서 엄마를 놓쳤어
문이 닫기고 .... 엄마가 오자 .... 차창에 딸이 손바닥을 댔지 ...

사람들은 난장이가 딸을 버린거라고 그랬어 ...
나는 첫 엠티를 가는 아이들을 봤어 ....

프라이 팬을 가지고 온 아이가 젤로 인기 있었지만
좋아하는 관계가 복잡한 아이들이었어 ... 프라이 팬 ... 감자 ... 버너 .. 쌀 ..
우리 역 철로를 닮았네 ...
갈아타기 표지판이 필요할거야 ...

우리가 엠티 갈때는 내가 프라이 팬을 가지고 가고 싶어
니 몸이 전부 프라이 팬이야
누구를 좋아하면 레일을 벗어나고 싶을거야 ....
나는 일병과 멋진 다리 여자가 데이트 하는걸 봤어 ....




새마을호가 지나가니까 .... 다리가 막 웃었어 ... 키쓰라고 하면서
일병이 은박지 쿠키박스를 다리에게 선물했어
다리는 재수생이랑 성북행 막차를 타더군 ....
그전에는 4번트랙 계단 아래에서 뽀뽀했어 ... 백화점 경비원이랑 ...
난 쓰레기통 뒤지는 할아버지를 봤어 .....




비닐 봉투 가득히 포장들을 담아와서 ... 차 안에서 하나씩 꺼내 읽었어
... 성분 제조회사 주소 유통기한 보관방법 .... 꼼꼼하게 ...
차 안에는 깜짝 놀랄만큼 여러 가지 냄새가 퍼져 나갔지
메론바 ... 딸기콘 ... 모닝 쥬스 ... 맥 프라이 ... 쵸코파이 ...

다리가 버린 쿠키 은박지가 나왔지 ...
할아버지는 다른 쓰레기를 밀쳐버리고 ... 은박지를 얼굴에 덮었어 ...
할아버지 눈자위가 빨개졌어 .... 일병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
냄새가 심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할아버지를 탓하지 않았어

누구나 엇갈린 사랑을 해봤을거야 ....
나는 보르네오에서 온 키 작은 여인을 봤어 ...

하얀 머플러로 얼굴을 조금만 나오게 하고 ... 작은 색을 매고
상행선에서 출구를 찾아 건널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걸 봤는데
하행때는 승강장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더군 ....
추웠나봐 .... 고개를 파묻고 병아리처럼 ....

잠에서 깨면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기만 했어 .....
이제 그만들 자 ... 아침에 시들해있지 말고 ...


아파트 상자들이 반듯이 줄을 이루어 잠들어 있는 담장 아래
길고긴 흔적을 담고 돌아온 전철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
일번 차량이 졸린 눈을 껌뻑이며 .... 호르릉 조물거리는 비상등을 바라보면 ....

건널다리 계단에서 난장이의 딸이 뛰어내려와 ... 승강장으로 걸어온다
가판대 앞 초록의자에 .... 하얀 머플러 여인이 홀로 앉아있고
딸은 여인의 옆에 ... 주저없이 앉는다 . 승강장 끝에서 담배피던
일병이 나오다 .... 그 옆 빈자리에 앉고 .....

달빛 내려온 파란 승강장에 ... 세사람이 나란히 앉아
멀티플렉스 네온 사인을 바라보고 .... 조금씩 흐려지면서 ....
일번 차량마저 잠에 빠져든다











한낮 ... 부평행 전철이 들어오고 .... 구르듯 계단을 내려온 ... 아줌마
손끝 간격으로 문이 닫기자 .... 골대를 비켜찬 스트라이커 폼을 잡는다
나가는 곳에서는 바쁜 걸음들이 스치며 .... 오늘의 역을 잊어간다
구로병원 .... 공구상가 ... 보링공장 .... 산업고무 ... 백화점 ... 입시학원 ....

팡데이 옆에서 연변 아줌마가 .... 요요 좌판 아저씨와 밀담을 나누고 ...
시큼한 보퉁이를 깔고 앉은 노파 곁으로 싯누런 백수가 이를갈며 지나가고 ....
영화 프로 ... 공장 월수 ... 학원 수강 ... 생일 선물 ... 가출 모의 ... 가 흩어진다
몇개의 건널다리 너머 ... 주출입 승강구에서는 발길을 멈출 수가 없다
멈춘 순간 .... 생활의 계단참에서 날아온 부메랑에 ... 목이 메일수가 있다







황혼이 오고 .... 딸의 손을 꼭 붙잡은 난장이 엄마가 ... 건널다리 창에서
경부 경인 기점을 가리킨다 ... 석양빛에 반짝이는 철로가 초롱한 눈에 비치고 ....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철로란다 .... 엄마는 .... 저기 보이는 ...
 수원행 오르막 길이 좋아 ..... 올라갈때마다 ... 발이 바닥에서 뜨는것 같거든 "

모녀 옆으로 사파리 모자 안개 파랑 주름치마가 어색한 폼으로 지나가고
프라이 팬 녀와 감자 남이 코브라처럼 엉긴채 마주 보며 계단을 내려간다
깜깜해진 밤 .... 바쁜 승객들은 좀처럼 느껴보지 못하는 ... 사려깊은 파장의
거리두기 조명이 다섯개 승강장에 .... 바레이션을 이루는 동안 ....

속옷 광고판 앞으로 할아버지가 다가와 .... 어제의 봉투를 밀쳐놓고 ....
쓰레기통을 뒤진다 ... CGV 팸플릿 ... 공단 이력서 ... 학원 시간표 .. 찬찬히 읽으며
디스 꽁초 맛나게 물고 ... 연기속에 디지털 게시판을 게슴츠레 보다가
- 동해안 촛대바위 ... 일출관광 ... 온천 - 대목에서 점퍼를 훌러덩 벗고 ...

샤워 폼으로 ... 팔을 벌리고 배와 등을 문지르며 ... 아련히 눈을 감는다
초록 의자에 보르네오 여인이 이국 할아버지 해프닝에 고개를 갸웃하고 ....
대륙에서 한바탕 바람이 불어오자 .... 하얀 머플러 시리게 나부끼고
두 외로운 사람을 지나온 신산한 바람은 ... 어제 봉투위 은박지를 날린다

빨간 시그널이 꺼지자 .... 문 다물고 ... 출발하는 전철에 은박지가 날아와
일번 차량 옆으로 .... 나란히 비행한다
과묵한 일번 차량이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자 ... 신호등이 동그란 눈이 되고 ....
은박지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 꿈의 저편으로 넘어간다

차 안에는 .... 극빈하게 짧은 치마를 입은 다리가 꼬박꼬박 졸고 ....
전철이 수원행 오르막길을 달려가면 ....
하늘 멀리서 .... 은박지가 반짝인다













2002 . 4. 19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