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다리 7
용두산 공원








그녀는 에스컬레이터를 버리고 계단을 오른다
남자 등에 업힌 여자 엉덩이가 개구리처럼 실룩이는걸 보며 ....
그녀는 그들 따라 계단을 하나씩 밟는다

조금 비틀린 이 기나긴 계단이 어디로 가는길인지 ...
그녀는 모른다 . 그녀는 아는게 거의 없다
서른이 넘은 나이도 ... 이름도 모른다

물빠진 잉크빛 셔츠 . 헤진 깜장 탑 . 올풀린 연필 바지
언뜻 떠돌이 잡년쯤으로 보겠지만 .... 누구나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 ... 빈티지 룩이라고 금방 통박을 바꾼다

그녀의 고양이 눈에는 푸른빛 띠가 언제나 감돌아서 ...
대개는 화들짝 놀라서 물러나고 ... 얼마쯤은
엑조틱한 허영 또는 연민의 오차로 꼬르르 빠져들고 싶어한다

계단의 끝에서 무료한 공원이 나타난다
소주와 새우깡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비둘기들이 다가오자 ....
한마리를 손바닥에 앉히고 그녀는 소주를 홀짝인다










그녀의 이름은 동희 . 서른 여섯살 홈리스 .
시립 정신병원에서 삼년을 보내면서 자해등 폭력성향으로 ....
전기충격 치료후 기억의 대부분이 소거되고 말았다

병원을 나온 동희는 수온을 따라 흘러다니다
알 밴 눈먼 물고기처럼 부산으로 ... 이 공원으로 올라왔다
부스스 밤송이 머리칼에 소년용 농구화 ...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어시장 창고에서 퍼지를 때마다
양아치 이상이 아닌 떨거지들을 만나곤 했지만 ....
동희의 눈빛을 사흘너머 견디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소주병을 비우자 영도 바다 수평선이 스믈대고 ...
새우깡 봉지를 떠나가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채 잠에 빠져든다

동희 열살 . 사생대회에 도시락도 없이 ....
매점에서 산 빵을 뜯어주자 몰려든 비둘기떼와 함께 ...
처음으로 남들의 시선을 받은 행복한 날이었다

엄마는 술만 취하면 동희를 때렸다
재수 없는 눈 . 서방 잡아묵을 눈 . 무당 팔자 눈 .
맞아도 그 눈에서 눈물은 커녕 푸른빛만 서늘하게 피어났다



잠깬 그녀는 굽이진 돌축대 길을 따라가다 ...
내리막길 여고의 유리창 앞에서 무언가 잡힐듯한 느낌으로 선다
하얀 커턴이 흔들리고 교실 스피커에서 춤노래가 들린다

머리 속은 어두운 공회전만 계속하고 . 저녁이 내려온다
사랑의 다리 . 그녀는 열쇠로 굳게 잠긴 철문 주변을 맴돌고 ...
난간 사이를 타넘어 들어가려다 경비에게 붙잡힌다

공을 든 소년들이 몰려와 미친년 구경을 하고
경비는 그녀의 눈빛을 보자 캭- 가래침을 받고 돌아선다
돌벽에 등을 기대고 그녀는 오래도록 다리를 바라본다



동희 열다섯살 . 백화점 옥상 휴게실 죽순이 . 중딩 중퇴
내리막길 여고 앞에서 유리창 넘어 튀어나오는 아이들 돈을 뜯고 ...
두어살 많은 고딩들과 면도날 클럽을 만들고 ....

건널다리에서 바닐라라는 남자아이를 만났다
다리 아래 숲을 바라보며 바닐라는 그랬다 . 떨어지고 싶다
함께 떨어지자 .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이후 . 동희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휴게실 콜라 박스 옆에 라면 상자 깔고 꼭 붙어서 살면서 ...
밤새 예닐곱번씩 토끼 같은 바닐라를 받아들였다

새벽이면 킹사이즈 콜라 벌컥이며 다리위를 뛰어 다녔다
백화점과 공원을 맴돌던 한쌍의 새끼 들개들 ....
동희가 입덧을 하던 비오는날 바닐라는 낙숫물처럼 사라졌다

늦은밤 건널다리에서 난간을 타넘고 뛰어내리려는 ...
소녀를 붙잡은 행인은 눈빛을 보고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여름 한계절에 일어난 일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 가로등 아래 춤 추는 여고생들 앞에서
그녀는 발길을 멈춘다 . 여름교복 휘날리며
음악 없는 손뼉 장단 턴과 점프를 보며 ...

어깨와 발끝을 가볍게 까닥이던 그녀는 ...
바다쪽 시야를 가로막는 검은빛 호텔 건물을 보고
난간 끝으로 다가가 급경사의 숲을 바라본다

소녀들의 장단과 웃음과 노래소리를 등지고 ...
무겁게 어두운 숲으로 고개를 빼고있는 그녀에게
공원의 붙박이 부랑자가 맥주캔을 한아름 들고 다가온다

맥주를 마시며 그녀는 주머니에서 알약들을 꺼내고 ...
부랑자에게 한웅큼 건네자 그는 겁 먹는다
안정제 진통제 피임약 ... 알약들을 안주처럼 씹어먹는 그녀 ...



동희 열여덟살 . 공원앞 호텔 나이트클럽 빈순이 .
디제이 딸기를 차지하려고 몸부림 치는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
등짝에 풀잎 묻어있으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딸기는 비는 시간 숏타임 정사를 위해 호텔 뒷문을 빠져나와
숲으로 올라갔다 . 딸기 유혹에 성공한 동희는
경사숲에서 오래 기대한 정사를 벌이고 ...

신명을 다 바쳐 엉덩이를 돌릴수록 비탈에서 미끄러지고
피멍이 들면서 멈추려고 애쓸수록 딸기는 쾌감에
신음을 질렀다 . 동희는 숲비탈의 배 같았다

플로어에 라이커버진이 터져나오자 동희는
자랑스런 낙엽 투성이 등짝과 쑤시는 엉덩이를 흔들었고 ...
다음날 딸기는 다른 여자와 숲에 올라갔다



맥주를 다 마신 그녀는 화장실을 찾다가 ...
공중전화 박스 따스한 불빛 앞에서 어깨를 감싸고 ...
밤을 기다리는 남자 같은 그 속으로 들어간다

전화번호부 냄새를 맡아보고 유리에 머리를 기대보고 ...
포근함에 놀란 새처럼 스르르 주저앉아
바지를 내리고 그녀는 참았던 오줌을 천천히 싼다

철판바닥을 때리는 오줌소리가 전화소리처럼 울린다
이대로 영원히 여기서 오줌 싸고 있으면 좋겠다 ... 생각하지만
그녀에게 . 이대로 . 영원히 . 좋겠다 는 없다

까만 수화기를 든다 . 호홉이 긴 호소처럼 신호음이 울린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젖어버린 전화박스에 몸을 포갠다



동희 스무살 . 해변 룸살롱 콜순이 .
초코라는 섹스를 하지 않는 섹스폰 주자를 만났다
주문이 많은 그는 발가벗은 동희 앞에서 자위를 좋아했다

남자는 전봇대 여자는 전화박스에서 오줌을 싸야한다는 ....
초코의 즐거움을 위해 동희는 기꺼이 유리통 속에서 엉덩이를 깠다
예술적 기질의 그가 동희는 늘 자랑스러웠다

초코가 동희 돈을 몽땅 들고 사라진날 밤 첫 음독을 했다
위 세척을 마친 환자의 눈빛을 보고 ....
응급실 간호사는 그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향이 빠진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기만한 남자들 ...
한려수도를 거쳐 신안군을 거쳐 섬 작부로 떠돌다
나이 서른에 정신병동 꽃순이가 되었다



귀두에 불밝힌 좆대 같은 콘크리트 타워를 보고 ....
더디게 움직이는 늙은이 좆 같은 꽃시계 짧은 바늘도 보고 ...
선체로 식어가는 것들에 그녀는 서글픈 시선을 보낸다

텅빈 광장 계단을 내려와 비탈숲 앞으로 온 그녀는
지나버린 날들처럼 순간의 주저도 없이 난간을 넘는다
낙엽더미에 부드럽게 빠지는 발의 촉감이 머리까지 타오르고 ...

나무줄기를 잡고 몇발짝 옮기다 손을 놓아버린다
경사를 타고 미끄러지다 주저앉자 ... 활강은 가속을 더하고 ...
뚝뚝 선명하게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숲을 굴러내리는 솔방울 같은 그녀에게 영상들이 터진다
초코의 매질 . 딸기의 이빨자국 . 바닐라와의 첫 피 ...
서있는 나무들이 지나간 남자처럼 그녀의 몸을 한번씩 거덜낸다



동희 서른세살 . 쇠창살 하얀방의 핀순이
네모가 그려진 하얀종이 치료 동의서에 이름을 쓰고나자
그나마 붙들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지워져 나갔다

너무 일찍 . 서툴게 . 어이없이 . 사랑 받기를 원했었고 ...
단한번도 돌아갈데가 없었던 ... 재수없는 눈빛에게 ...
버린 신발 한짝처럼 과거는 그렇게 사라졌다

병원에서 알록달록 알약 꾸러미를 꼭 안고 나온 동희는
각박한 들새의 모이처럼 약을 씹어먹으며 ...
밤바다 기억속에서 깜빡이는 한점 빛을 찾아다녔다



짧은 마찰과 긴 허무 . 인연 버린 섹스처럼 추락을 하고
따스한 핏물이 마지막 애무처럼 온몸을 쓸고 ...
그녀는 하늘에 걸린 다리를 본다

다리 위 가로등에 불이 하나씩 들어오면서 ...
열다섯살 바닐라가 난간에서 고개를 빼고 그녀를 쳐다본다
그를 부르고 싶지만 소리가 되지 않는다

바닐라가 난간을 떠나 휴게실쪽으로 걸어간다
나를 찾겠지 . 동희는 미소 짓는다
사랑하기 좋은 밤이다










2003 . 8. 19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