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선재 . 빈자의 성


나라의 금고가 바닥나고 남자들이 지하철 역으로 나와서 잠을 자던 몇해 전 . 종로의 깊숙한 안골 임금이 살던 동네 가까이에 성이 하나 지어졌다 . 그리고 세상을 꾸짖는 그림들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

성의 주변에는 청국장과 짜장면과 빨개 라면집이 있었고 .. 성 안에는 서역에서 건너온 음식을 팔았다 . 몇그루의 나무와 독채로 된 집이 하나 있었다 . 성 밖의 도서관에 올라가던 아이들은 문에 달린 성난 눈썹 같은 지붕에 놀랐다 . 하얀 돌벽 꼭대기에는 나란히 감시 구멍이 나 있었다 .

얼마후 거리의 화가 바스키아가 불행했던 시대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 성 안은 바스키아와 어울리지 않았고 앤디 워홀이 옥상쯤에 있을것 같았다 . 워홀을 쏜 여인이 계단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  성곽의 지하는 그래서 처형장 같기도 했다 . 비밀의 통로를 따라 어두운 문이 기다리고 있는 ...

한해 후에는 꿈속의 미로 라는 영화를 했다 . 비좁은 복도에서 사람들은 무관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 방사선과의 복도 같은 하얀 벽을 따라 단층 촬영을 하러 가는것 처럼 배설을 하고 ... 미로를 꿈꾸러 영화관에 들어갔다 .


그동안 성에는 밥집의 국적이 바뀌었고 입구의 장터 풍경도 변화해갔다 . 뜰안의 집은 성안의 섬으로 남아 있었다 .
몰락이라기에는 역사가 짧았고 군량미 창고나 죄수의 감옥이라기에는 경비가 너무 허술했다 .


입구에서부터 배를 내밀고 있는 성벽은 경복궁을 향하다가 잘려버려서 배고픈 자의 허세 같아 보인다 . 성은 처음부터 배고파하고 있었다 . 먼저 밥집이 들어와 있었고 .....   한동안은 입구의 장터 가운데에 프랑스산 맹물 상자가 발광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 먹고 마시고 난 자만이 ....




배고픈 자에게는 건데기가 아쉽지 공기는 쓸모 없다 . 극장은 가끔 배를 가득 채우기도 하지만 ... 밖으로 나오면 호주머니만한 홀과 비닐 봉다리 같은 선큰 계단이 헛트림을 하고 있다 . 입구의 장터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지만 물장수를 할 예정이란 글발이 보인다 .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고 나오면 계단에서 종로의 기와 지붕을 볼 수 있다 . 여고 건물을 지나 종로 타워의 브릿지도 보인다 . 잔상이 훌륭한 몽따쥬를 만들어 주지만 밋밋한 계단에서 담배를 필 수도 없다 . 두 개의 유리면은 쇠붙이 계단과 연결되어 시야는 열어두지만 공간으로는 네모 벽일 뿐이다 .

미술관에도 극장에도 근처에 머물기가 옹색하다 . 전철 안처럼 눈을 깔고 마주보고 있어야 한다 . 극장은 현관에서 표를 팔다가 지하 매표소가 생기면서 홀 = 전철안 + 승강장 + 매표소 가 되었다 . 어두운 선큰 계단 아래에서 나란히 담배를 한대씩 문다 . 영화제라면 동굴 안인들 어떠하리 ...



음식점과 서점에서 목욕탕과 도서관까지 재래식 문화의 오케스트라 위에 ..... 하얀 덩어리의 '아트'라는 성이 들어섰을때에는 꼭대기의 창에서 화살이라도 날아올것 같았다 . 공간이란 스스로 팽창하고 적응한다 . 전망 좋은 3층 화장실 창 가에서부터 근처가게 파라솔까지 휴게실은 연장이 될 수 있다 .

여유 공간이 좁은 만큼 휴게시간 극장안에서 김밥을 먹고 리포트를 쓰고 뜨개질을 하는 관객들이 있다 . 그들 앞에 오즈 야스지로와 알랑 레네의 공간들이 다가오면 그들은 자신들의 동작 그대로 영화속으로 들어간다 . 빈곤한 공간은 관객들을 진공 청소기처럼 스크린 안으로 집어 넣는다 .

비좁은 복도에서 돌아온 관객들은 낡은 아파트의 복도 장면에 맘 시리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 그들은 레네처럼 공간을 원격화할 수 있었고 ... 야스지로처럼 비어져 갔다 . 객석에는 공기방울이 나른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 안국역으로 향한 담장이 높은 길은 동호회 모임의 하산길처럼 수런거리는 목소리들로 이어졌다 ..... 밥 묵었나 .... ?
아 ... 배고파 ...


2001 . 8. 19.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