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다리 1
파라다이스 호텔








20년전 . 그보다 더 이전이었던가 ...
바다에 오면 시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해변의 모퉁이에서 마주서다 부서지는 바위로 ...
안쪽에서 휩쓸리다 돌아서는 모래로 ....
파도가 시간을 당기고 놓아버리며 밀려온다

초여름 . 바나는 준이랑 모래밭에서 캐취볼을 하다가
공을 놓칠만큼 유별난 다리를 본다 . 샌들을 들고
스파게티 스트랩 탑에 .. 핫팬츠 뒷주머니에
치솔을 꽂은 그녀는 맛이 가 보인다 . 허공을 향해
실실 웃는 눈이 거의 풀려있고 ... 대마 또는 약가루 냄새가
풀풀 날리는 것 같다 . 여름은 이제 막 마개를 열었는데 .....

약물 중독 여자를 뼈속깊이 미워하는 준이를 뒤로하고
바나는 여자랑 발이 푹푹 빠지는 뜨거운 모래길을
걸어간다 . 자동인형처럼 쉬임없이 웃으며 ...
의미가 토막나버린 말들을 나지막히 툭툭 던지는 여자를 보며
바나는 ... 수줍은 년놈의 첫 데이트 같다고 생각한다



카지노 호텔앞 벤치에서 그녀는 파도처럼 쉼없이 말한다
지난여름 저기서 핫도그 장사했어 ... 백개 오백개 ... 어떤날은
핫도그 천개에 케첩을 발랐어 ... 이렇게 찌익 ... 살짝 눌러 ...
호텔벽 색깔이 핫도그 색이야 ... 갓 튀겨진 핫도그를 꺼내서 ...
이렇게 세워서 ... 호텔색이랑 비교하고 ... 잘 튀겼나 했어 ...
호텔벽에 케첩을 바르는 거야 ... 이렇게 이렇게 ...
핫도그 카지노 호텔 ... 노릿노릿 잘 튀긴 ...

해가 기울무렵 . 미소가 사라지고 고요해진 그녀가 돌아간다
왜 그녀를 붙잡지 않았을까 ... 여름에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의 미스터리들이 스쳐간다 . 모든 낮은 것들이 일어설만큼
구조적인 다리의 퇴장을 ... 바나는 허구처럼 바라본다
약 먹은년 따먹으면 ... 빨강 딱지야 ... 여름 끝까지 ....
케첩을 칠하듯이 그녀는 그런말도 했었다

석양이 지자 바나는 해변 망루에 올라간다 . 물들어가는
바다에 그녀의 바닥없던 말들이 흩날린다
파도에 순서가 있는데 ... 만날 수 없는 파도들이 ....
해변에서 하나가 되는거야 ... 바람이 밀어줘서 ... 이렇게 ...
튀어오르고 타넘고 쓸려가고 ... 어디서 한번은 만나 ....



카지노 호텔 로비 창으로 미니는 남자를 본다 . 해변에서 ...
자신을 보다가 야구공에 머리를 맞은 남자가 미니는
무척 맘에 들었다 . 텐트에서 줄대마를 때리고 ...
핫도그를 사러나온 길이었다 . 그는 왜 나를 붙잡지 않았을까
케첩이 핫도그의 마음을 뒤집을 수 없겠지 ....

망루에 올라가는 남자를 미니는 오래도록 바라본다
남자와 미니 ... 해변에 두개의 꼭지점만 남겨두고 밤이 내려오고
나이트클럽에서 ... 상심의 바다가 연주된다






그후 십년쯤 지나고 ... 해변에는 호텔들이 커턴처럼 막아서있고
바다로 가는 길은 호텔 사이로의 흐름이 된다 . 바나는
섹스와 술에 적당히 뒤엉켜 살면서 ... 정점에서는
언제나 해변으로 온다 . 오늘밤 . 나이트클럽 플로어에서
바나는 지난날 케첩의 꿈 그녀를 다시 만난다

통로에서 바에서 화장실앞에서 ... 그녀에게 다가가려 할때마다
그녀에게는 남자가 나타난다 . 의식은 피드백하는데
시간은 흘러가고 ... 바나는 클럽을 나와
호텔 앞길을 홀로 걷는다 . 핫도그 호텔이 사라진 자리 ..
어디에 케첩을 발라야할까 ... 지난날 여름 벤치가 있던 자리에
호텔 사잇길 골바람이 먼지를 안고 지나간다

해변 포장마차에서 바나는 취해가며 ... 바다가 ...
시커먼 핫도그 같다는 기분이 든다 . 하늘에서 손이 내려와
하얀 포말 케첩을 찌익 ... 천개나 넘게 뿌리는 것처럼 ...
카세트 널바나에 ... 바나는 퇴물 라커처럼 끄덕이며 중얼댄다
파도는 해변에서 만나자마자 부서져 ... 언제나 ...



남자가 클럽을 떠나자 미니는 곧이어 나왔지만 ... 그는
로비 . 입구 . 승강장 어디에도 없다 . 여름동안 망루가 있던
모래밭까지 걸어나온 미니는 달빛 바다를 바라보다 ...
자꾸 뒤를 돌아본다 . 여름 열병의 열꽃처럼 ...
호텔에 불빛들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그후 다시 십년쯤 흐르고 ... 해변에는 상상을 가로막으며
욕망을 복제한듯한 트윈 호텔이 들어서있다 . 바다로
가는 길에 2층 건널다리가 ... 투명한 음부처럼 걸리고 ...
그 아래 조각난 음경처럼 세개의 입상이 박혀있다

항구도시를 떠났던 바나는 준의 장례식에 왔다가 ... 봄비 오후
바다를 찾아온다 . 구멍난 입상의 세사람 ... 바나는
준을 생각하고 ... 이십년전 케첩 걸을 떠올린다 . 세사람이
나란히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 남자들은 야구글럽과
옷을 벗고 ... 여자는 치솔 꽂힌 핫팬츠를 벗고 ...
물속에 뛰어든다 . 여름이 가버리자 그들은
채울 길 없는 구멍으로 남아있다



호텔 지하 바에서 늦도록 마시던 바나는 ... 트윈 피아노가
해변의 이방인을 끝내자 ... 술병을 들고 .. 건널다리로
올라온다 . 해풍에 쓸리는 밤비가 유리창을 때리고 ...
바나는 통로의 이방인처럼 창가에서 병술을
찔끔이며 마신다 . 물그림자에 라일락빛 재킷이 비치고 ...
다리를 지나가던 여인과 시선이 세팅된다

처음에 바나는 ... 지나가던 여인이 다시 돌아서자 ...
늙은 창녀인가 생각하다 .. 다음 순간 .. 빠찡꼬에서 돈을 날린
왜년일까 ... 유리면끼리 반사된 빛이 한순간 겹쳐지면서 ...
그녀가 낯익다 . 무언가를 버린듯한 얼굴 . 창백하게
증발해가는 듯한 ... 그녀가 바나와 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창밖을 내려다 본다

해변 데크의 가로등 빛을 받는 세 입상을 보면서 ... 바나는
그쯤에 서있었을 핫도그 수레를 떠올리고 ... 취기와
돌연한 회귀로 목에 퍼지는 달콤한 슬픔에
이빨을 지긋이 문다 . 바나는 그녀에게 준과 그여름과
모든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 남은 술을 마시고
바나는 지난날 그랬듯이 그녀를 돌아본다





핫도그 같은 밤이야 ... 게임룸을 나오며 미니는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 객실로 가기 전에 찬바람을 맞고 싶지만
비를 바라보다 건널다리로 올라온다 . 술병 들고 있는
남자를 보며 ... 처음에 .. 빠찡꼬에서 못보던 얼굴 .... 다음 순간
현지년한테 채인 왜놈인가 ... 라고 생각하다 ...
찬비를 맞은듯 미니는 발길을 돌린다

유리면에 남자가 여러 개로 비추어지고 있는 ... 이 건널다리를
미니는 유난히 좋아한다 . 오래전 카지노 호텔 나이트클럽
로비 창이 이쯤에 있었다 . 정키 . 빠순이 . 마담 . 정부 ...
홀몸 굴리고 살았지만 해변을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미니는
어느 여름의 황혼을 잊지 못한다 . 여기에 서있으면 ...
망루에 올라가는 남자아이가 보일 듯 하다

여름은 핫도그 같아 ... 노릿노릿 구워진 백사장에 ...
튜브 .. 수영복 .. 파라솔 .. 비취볼 ... 케첩을 치는거야 ...
미니는 지난날처럼 말해보고 싶다 . 창에 비치는 남자의
술병이 비는걸 보며 ... 미니는 그를 돌아본다
밤비 유리창마다 두사람의 모습이 담긴다



파고가 높아진 물결들이 드센 바람을 타고 만나서 ...
튀어오르며 해변으로 밀려온다 . 대양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까 .......

바다에서는 시간이 쓸데없다










2001 . 7 . 13
2003 . 12 . 23   Rev.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