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 어두운 유리를 통하여


맹물 같은 콘크리트 공간 앞에 유리문들이 해안선처럼 나타난다 . 왼쪽문으로 돌음 계단을 빙그르 내려가면 지하 동굴로 가는 길이고 ... 자동문을 통과하면 오른쪽 골목길에 극장 문이 있다 . 소란스러운 바닥을 쿵쿵쿵 들어가면 좌초한 폐선을 끌고 온것 같은 객석이 있다 . 나다 . 그리운 칸소네 가수 나다 .




타이페이의 거리가 비치는 커다란 창으로 밤이 바다처럼 밀려다닌다 . 세상은 영화처럼 당신 마음에서 반복되어 흐르는것 . 피아노와 함께 마지막 자막이 올라오자 가혹한 현실의 다른 시작처럼 커턴이 열리기 시작했다 . 폐선의 기관실에서 에드워드 양이 길게 한숨을 쉰다 .

장독대 옆으로 해가 지지 않는 북구의 긴 여름밤이 시작되었다 . 차가운 바람이 커턴을 흔들고 등대에서 부적이 울리고 있었다 . 누구나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밤 . 시간이 고립된 섬 나다에는 등대의 빛이 지나갈 뿐이었다  ........ 어두운 유리를 통하여

커턴이 닫기자 프랑스 여배우가 히로시마에 두고 온 사랑을 낭독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걸까 .... 객석 바닥에 숨어있는 공간으로 시간이 회전하면서 낯익은 소스 냄새가 나른하게 피어오르고 ... 브라더스 포의 허밍과 함께 극장은 몇해전 식당이었던 시간대로 돌아가고 .... 창가 넓은 자리에 여배우가 장독대를 바라보고 있다 .




나다는 객석과 스크린을 껴안고 노출을 즐기는 비키니 스트리퍼 ... 종일토록 장독대 앞에 서서 커턴을 걸쳤다 벗었다 하며 엉덩이를 흔든다 . 지나가는 고양이가 가끔씩 멍하니 보다가 킥킥대며 달려간다 . 통로를 사이에 두고 좌석에 앉는 사람들은 전화기를 끄고 얌전히 고개를 앞으로 향한채 나다가 커턴을 걸치기를 기다린다 .

좌초한 배 나다에 밤이 깊어가고 마지막 빛이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나면 ... 좌석 등짝에 새겨진 이름들이 하나씩 길게 한숨을 쉰다 ..... 하루종일 개펄의 조개껍데기처럼 뒹굴어야 하는 이름들은 체념과 비애로 미지근한 여운의 만남을 시작한다. 이미자씨 .... 어머 김일씨 ... 어이 성일아 ...

와글대는 이름들 사이로 에드워드 양이 끼어들고 ... 팍삭 늙은 베르히만이 끄덕끄덕 졸고 있다 . 알랑 레네가 잘난 척하며 일어나서 한마디한다 . 우린 결국 다 잃어버리고 이름만 남은 존재입니다 ... 까고 있네 ... 엽전들이 한바탕 웃는다. 창가에서 반짝이는 고양이 눈이 한심한 밤을 탄식한다 . 야옹

영화의 섬에 갇힌 불후의 관객들에게 나다는 작은 뜰을 우문처럼 내 놓는다 . 영화가 끝나면 창으로 비가 내리고 눈이 온다 . 먼 시간의 북소리처럼 쿵쿵쿵 울림이 바닥으로 지나가고 나면 영화는 이름만으로 등짝에 남겨지고 늙은 고양이의 시선이 동그랗게 빛난다 .... 어두운 유리를 통하여


2001 . 6. 1.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