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 도서관 . 빛의 우물


한낮의 태양은 샛길로 접어들면서 골을 따라 흘러간다 . 도닦는 수도승이 산사로 가는 마음으로 길에 접어들면 대사관저의 배타적인 담장이 주눅 든 포근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

나란히 두개의 여고가 이어져 있고 ... 이 오래된 예비공간들을 거쳐 ..거의 반이 경과되는 지점에서 머리위에 걸린 다리 하나가 일주문처럼 지나간다 . 그리고 미국의 담장과 우리의 기와집들을 지나 일본식 학교로 접어든다

출입구에는 대형 거울이 있다 .. 내가 여기 뭐하러 왔더라 ... 어쨌든 파란물 든 종이 한장을 받아 쥔다 . 탑이 하나 있는 산사의 배치같은 넓은 뜰에 방사형 오솔길이 마련되어 있다 . 입구의 조감도에는 길가에 벗꽃을 모조리 그려 놓아서 옛 동물원을 연상 시킨다 .

전면에 사료관( 동물 사료 아님 ) 벽돌 건물이 있고 우측에는 회랑식으로 조선 집이 있다 . 두 건물 모두 접근할 수 없는 벽화처럼 버티고 앉아서 마당을 서먹하게 분리시켜 놓는다 .


우리는 오랫동안 문을 꼭꼭 닫은 집들을 익숙하게 외면해오고 있다 . 이 근처에는 그런 집들이 많다 .

길은 벤취 파고라 덩쿨 식물로 단조로운 반복을 하다가 단출한 분수대를 너머 입구로 향한다 . 아취형 포취는 빛을 조각내고 커다란 새장같은 역광안에 꽃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담아낸다 .


현관에 직교하여 그랜드 피아노의 건반과 같은 긴 복도가 가로질러 간다 . 하얀 음계의 벽들 사이로 반음의 창에 빛이 반짝이고 ... 발자욱이 지나가면 음들이 산란한다 . 바닥에는 강세표시 팻말이 놓여 있다 ... 조용히 ..... 진행과 관성이 교차하는 빛의 프레임으로 실루엣들이 붙임음으로 지나가고 까만 슈트 여직원의 높은 굽이 스타카토로 멀어진다 . 빛의 우물 속으로 ...




난간에 문양이 장식된 두툼한 계단을 오르면 누각 같은 건널다리가 나온다 . 바하의 복도를 지나 모짜르트의 다리에서 빛은 다가올 층의 스크린을 스테레오로 울린다 . 이 투명한 창가에서는 심란한 결정을 해야 한다 .
.. 연속 간행물실에서 잡지나 보까 ...

계단실 아래에 손바닥만하게 나란히 박힌 유리창에서처럼 팽개쳐진 빛들이 여기저기서 떠돌다 고여있다 .


밖으로 나오면 에어컨 바람개비 옆에서 담배를 피는 얼굴들이 보인다 . 수용소의 한 낮 같다 . 근처에는 고려시대 우물 유적이 완강한 철책 너머에 있고 ...
건널다리 아래 버려진 공간들이 시무룩한 응달을 만들어 놓고 있다 .

식당으로의 통로는 카우보이가 마구간 가는 길처럼 가는 나무기둥이 나란히 서있다 . 산사로 말하자면 통도사 대웅전처럼 주축에서 비켜서있는 식당은 허허로운 층고의 종착점 같다 . 김밥만 먹고 내려가고 싶은 허무를 느낀다 .

도서관 건물은 손을 대면서 자꾸 나빠져가고 있는 퇴락이 아무데서나 다 묻어있다 . 평준화의 시대에 식민지 문화를 돌이켜보면 자꾸만 우울해진다

막아놓고 방치한 장소들로 건물 사이는 죽어버린 공간들이 쌓여간다 . 앞 뜰에 비해 열람실 바깥 장소들은 토막나고 버려져서 전체적으로 공원 + 도서관 처럼 구획된 분위기이다 . 뜰에서 낮잠이나 자고 집에 가 ...

빛 . 열람실의 층고를 낮춘것이야 할 수 없다해도 ...... 건널 다리의 빛 여울을 막아서버린 게시판의 존재는 지나갈때마다 하품이 나온다 . 비어 있는것을 조악하게 채우는 가난한 문화 . 찬란한 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서글픔 .

절대적이고 크고 높은것들은 잘라나가는 기능은 식당에서 더 발휘된다 .
돌이킬 수 없는 높다란 천정과 길다란 창이 ...... 왼쪽에는 자판기와 냉방기로 막히고 .. 오른쪽은 가건물 창고로 반 이상이 잘려진다 . 마치 식당은 이렇게 어수선해야 한다는듯 덧칠해놓은 공간으로 몽당 빛들이 헛돌고 있다 .





비가 간간이 오는 낮 . 도서관의 정기 휴관날이었다 . 입구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 갔다 . 아 짜증나 ... 로 시작되는 허탈한 표정들이 겹쳐지며 ...
오랜만에 ... 정말 함 해볼려고 했는데 ... 내 팔자에 공부라니 ...
우린 안돼 ... 도서관이라니 ..

조금씩 메워지고 남아있는 오래된 빛의 우물 .
휴관날 숨죽이고 있던 여린 빛들이 빈 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울린다 ....
우리를 ... 내버려 둬 ...


2001 . 8. 7.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