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 남마담 집


공우의 기억

언덕길이 내려가는 지점에 그집이 아직도 있다 . 오래된 미닫이 문을 열면 안에서는 꾹꾹 눌러둔 기억들이 쏟아질듯 밀려나온다 .
라디오에서 양정모가 몬트리올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뉴스가 나오고 .....

그는 아저씨라고 불러야할 것 같았지만 우리는 그냥 마담 형님이라고 했다 . 늘 밝은 얼굴에 욕을 달고 살았지만 좀체 화를 내는적이 없고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 그는 요리사고 바텐더고 언덕길의 파수꾼 남마담이었다 .




오래전 이 땅에는 고등어와 막걸리 세트의 개화기가 있었다 . 이 개성 있는 술 문화는 80년대의 개방화 하향 평준화 문화와 함께 언덕길 전체에 생선구이 연기로 안개를 피우더니 그 문화의 특징 그대로 소리없이 하나씩 사라지고 박물관처럼 이 집을 남겨두고 있다 .

이 작은 막걸리 집이 하나의 아이콘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 고등어가 갈비고 막걸리는 야쿠르트 . 간장을 포도주라 불리웠던 이 걸쭉한 창고에는 몇개 없는 테이블로 저녁시간에는 거의 발 길을 돌려야했기에 주로 낮술을 마시며 한가한 마담의 객담을 듣곤 했었다 .

우린 그때 아무 삐어홀이나 돌아다니던 얼치기 밴드였다 . 기타를 치던 성정이가 무척이나 사고 싶어하던 중고 와와를 중계해준 사람도 남마담이었다 . 그는 그 시대 남포동이란 우주를 돌고 있는 레이다 행성 같았다 .
고등어를 뒤집는 별 ....

신체검사를 하기 전날 마담집에서 간장을 막걸리 사발로 퍼마셨는데도 현역으로 판정 받고 말았다 . 아마 그 이름이 포도주라 성분은 달랐던지 .....
마담은 야쿠르트는 후하게 주면서도 포도주는 인색하게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도 공기를 타는지 이집 술꾼들은 간장을 유난히 즐겨했었다 .

낮에 술집 안에는 동네의 이쁜 여자애들이 다 모여 있었다 . 한번은 나도 무척 취한채 엉망이 된 걸을 버스로 바래다준 적이 있었다 . 한마디 말도 없이 딸꾹질만 주고 받으며 가다 중간에 내려서 길가에 토했었다 .

한 여름 가게 앞 평상에서 검은 나비의 '사랑한 후에'를 부르면서 시간을 끌어 안으려했지만 ... 무덥던 어느날 입영 열차를 탔었고 ... 다시 돌아온 마답집에 마담은 없었다 . 길가에 나란히 서있던 어학원을 다니면서 가끔 들렀지만 남마담이 없는 탁자위 공기들은 이미 추억의 냄새를 안고 있었다 .

동전만 딸랑이던 우리는 막걸리도 과해서 소주를 마셔댔고 고갈비는 엄두도 못냈지만 마담은 한번도 싫은 표정을 짖지 않았었다 . 그에겐 시대를 닮은 풍류란게 있었다 . 요즘도 어디서 생선 굽는 연기를 보면 그 목소리가 들린다 . 문디 새끼야 깍두기나 처무-라 포도주는 지랄할라꼬 퍼묵노 ...



이지의 기억

그집은 지독히도 좁았다 . 술집 안의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다 들을 수 있었고 취한 애들은 옆 테이블 이야기에 말꼬리가 돌아가기도했다 .
생선을 굽고 있는 마담에게 가끔 ... 마담 그렇지예 ... 따위로 연결시켰고 . 마담은 모든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 .
남마담 .... 그는 수영장의 높다란 망루에 있는 인명 구조원 같았다 .

화장실은 악명높게 좁았다 . 앉았다 일어서면 양벽면이 함께 따라 나올것 같이 꽉 끼었다 . 술이 막걸리니까 종종 가야만 했고 ... 근처의 악취로 인해 왠만큼 취하면 그냥 토하게 되는 지뢰밭이었다 . 그래도 그런 공포를 견디게 해주는게 그 집에는 있었다

배가 통통한 고등어가 아이보리빛 속살로 김을 내고 있었고 ... 야쿠르트 같은 막걸리와 와인 같은 간장이 있었다 . 그때는 빽 바지 . 치마를 즐겨들 입었다 막걸리도 쏟으면 그렇지만 가끔 치명적인 간장 방울 얼룩이 지도록 깔깔대며 마셨다 ... 마담 오빠의 지랄맞은 욕을 들어가면서 ..

우리는 지금 로얄 호텔 자리 뒷편에서 방을 얻어놓고 밤이면 일하러 나가곤 했다 . 낮에는 슬리퍼 바람으로 눈을 비비며 일과처럼 마담집부터 갔다 . 마담 오빠는 가게 2층에서 살림을 살고 있었고 ... 언니는 우리가 오면 시레기국을 한 대접씩 내놓았다 .... 그러고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가끔 집 나간 애 찾아오는 부모가 마담을 닥달하는 모습을 봐야 했고 술집 어깨들이 여자애들 단속하러 들러서 손마디에 우드득 소리를 내곤했다 . 그때마다 마담은 우리편에 서서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 그에게는 뭐랄까 공기중에 희박하던 어떤게 있었다 . 굳이 말하자면 ... 자유 ....

마담의 욕지거리를 유난히 못참아하던 혜성이는 가끔 언성을 높여가며 지독한 욕으로 싸웠다 . 손님들은 두인간의 욕 퍼레이드를 즐겼고 ... 욕부분만 백코러스처럼 따라했다 . 막걸리 잔을 휘휘 저으면서 ...

마담의 평가는 조금씩 달랐다 . 영악한 장사꾼에서 생선 연기 속의 한량 . 귀여운 잔소리꾼 .... 하지만 남포동 큰 오빠란데는 토를 다는 애가 없었다 . 애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해의 폭도 깊었다 . 마담 앞에서 수다를 떨어야 하루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었으니까

모닥불 같은 날들이었다 . 비좁은 화장실에서 '하이'라 불리던 대마초를 피고 막걸리를 벌컥대면 하늘에 오렌지와 남보라의 층이 지면서 아득히 흔들렸다 . 그렇게 취한 어느날 딸꾹거리던 머시마가 굳이 날 데리고 버스를 태우더니 중간에 사라졌다 . 난 버스를 타고 갈 데라곤 없었던 밤이었는데 ....

여름이 지나가듯 어느날 종이 가방에 옷가지를 구겨넣고 남포동을 떠났다 술을 마시지 않던 마담이 글라스 가득 소주를 따라서 한잔 마시고 언덕길까지 따라와 주었다 .... 한 시절의 마지막 장면에는 그 언덕이 남아있다 .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마담 오빠의 발간 눈과 함께 ...

나는 고등어를 굽지 않는다 .
만약에 굽게 된다면 ...... 그 여름 비좁은 언덕길로 남자애들이 부르던 '사랑한 후에' 라는 노래와 막걸리와 하이의 연기가 차례로 오렌지 빛 하늘에 나타날 거다 . 이제 완전히 바래진 종이 가방 같은 이야기들과 함께 .



2001 . 5 . 9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