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잔뜰 술집길



안산 고잔동에 위치한 극장에서 오 수정 이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
재훈이란 남자가 수정이와 전화통화를 한다 .... 어디에 있어요 ? 안산요 .... 안산이 어디에요 ? (재훈 놀란다) ... 전철타면 오는데에요 (관객들 웃는다) .... (재훈 멍하다) .... 안산 못미쳐 고잔이란데에요 .... 고잔요 ? (더 놀란다) ...(관객들 더 웃는다) ... 재훈이 전철노선도를 본다 . 이 성북동 도련님은 고잔이란 지명에 피지 군도의 외딴 섬 이름이라도 들은듯이 미지의 표정을 짓는다 .

고잔역에 내리면 수정이가 걸어오던 길이 나온다 . 길가로 술집들이 줄지어 있을뿐 황량하기 그지없던 그 길은 재훈을 만나러가는 수정이의 맘을 있는대로 그려주고 있었다 .

지금은 그 길에 고잔뜰 주거 대책 위원회라는 간판이 있는 사무실과 문닫은 서너 군데 술집과 철거된 잔해들이 쌓여있고 ... 빈 터에서 키우는 개들이 사람이 지나갈때마다 메마르게 짓고 있다 . 고잔지구 신축 아파트 단지와 전철역을 잇는 공사는 지나간 시간들을 하나씩 공백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삼년전까지만 해도 고잔역에는 지붕이 없었다 . 플랫폼에 내리면 고잔벌의 황량함과 수인선 협궤 열차의 끊어진 선로와 폐쇄된 다리의 잔해가 그대로 시야에 들어왔었다 . 철길을 따라서 색동간판의 술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



오래전 이 부근은 바다였다고 한다 . 바닷가로 쌀과 소금을 실은 기차가 달리고 철로 연변을 따라서 포구를 찾아오는 객들을 맞이했던 술집들이 바다가 메워지고 기차가 사라지면서 철길과 함께 남아있었다 .

협궤열차 변에 분홍 커튼을 친 술집문을 열고 높은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나그네들을 구경하고 서 있는 .... 신경림의 시 '군자에서' ..... 의 풍경들은하나씩 사라져갔다 . 꽃마차 ... 궁전 ... 은하수 ....에서 골목길 안에 있던 하얀 여인숙까지 ...

길 끝에 엎드린 와리 횟집의 수족관은 텅 빈채 모터만 돌고있고 ... 술집 문마다 자물통 위에 남아있는 빨간등이 겨울바람에 떠나간 여인들의 집을 지키고 있다 .
이브 .... (카드환영) 이라는 간판 밑 네온관 틈새로 유선방송 고지서가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다 .

고잔뜰 술집길을 따라 수정이는 이상적인 도시 남자 재훈을 만나러 떠나가고
동굴같은 지붕을 얹은 고잔역 푸른 창으로 오래된 이야기들이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고 있다 .....
페이드 아웃 .



2000 . 8. - 2001 . 2 . 5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