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하얀 사랑
by RAN



수술부는 병원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 그 가운데 속
가운데 침대 하나가 있다 . 창문 하나 없는 방
피 냄새 단단히 뭉쳐진 벽 . 초록빛 시트 ...
병원은 깊은 속에서 내밀하게 열린다



아몽 병원 병리학실의 스타 닥터 루루는 39살 미혼모로
출산한다 . 아가의 아버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
보는 이마다 기절할만큼 안아보고 싶어하는
눈빛 피부 별빛 눈 아가의 이름이 루사라고 지어졌다

병약한 루사는 혈관이 보이는 데마다 주사를 꽂고 커서
보는 이마다 눈물 찔끔이게 했다 . 루루는 신명을
다바쳐 아들을 살려보려 했지만 ... 병세는
더해갔고 ... 깊은 슬픔에 루루마저 병을 얻고 말았다

생후 한번도 병실을 떠나보지 못한 루사는 자라면서
피부가 순백에 가까워갔고 눈빛은 더 맑아져서 ...
주치의와 담당 간호사는 선글라스를 장만해야 했다
루사의 회진 시간이면 하얀 가운 까만 선글라스 의료진들이
몰려와 ... 풀사이드 오리들의 해프닝 같았다



닥터 루루가 심장마비로 52살에 요절하자 ... 병원에서는
그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임상병리학과 앞 통로를
루루 복도라고 이름 지었다 . 루사는 엄마가 떠나자 기다린듯
13살 나이로 기나긴 코마 상태에 빠져들었다

색혈병 또는 무한 채색 혈액병이라고 불리는 루사의 병은
이름만 붙였을뿐 원인과 치료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유리벽으로 된 특수병동에서 증세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었다 . 루사의 눈부신 피부 때문에
유리벽에는 미세한 코팅 처리를 하였다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 . 피 색깔이 변하는 루사가 ....
어릴때 엄마의 실험실에서 색소 화학물질을 마셔서 그렇다는둥
엄마가 무지개 화학요법을 썼다는둥 ... 미친 화가 아빠가
천연색 물감에 밥을 말아 먹었다는둥 ...



루사의 담당 의료진들이 미쳐갔다 . 깊은밤 간호사가 루사를
애무하다 잘렸고 ... 주치의는 남색을 하려다 구속되었고
새벽녁 당직의가 유리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정물이된 미소년의 몸에 휘감긴 사람은
색욕의 터널에서 미아가 되고말았다

주사약으로만 버티면서 투명해져가는 루사의 피부는
흐느낌으로 구워낸 빵의 속살처럼 포근하고 ...
이른봄 찬비로 빚어낸 자기처럼 촉촉하고
가을 들녁이 쏟아진 것처럼 화사해서 ... 한번 손을 대본
의료진들은 촉감의 잔해에 몸부림 쳐야했다

병원에서는 결국 . 의료진들의 안전을 위해 ...
루사를 폐쇄 병동으로 옮기고 코마의 끝을 기다리고 있었다
3대째 아몽 병원 닥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명문가의 외아들 루사는 마약중독자 병동에서
버림받은 열다섯살로 1971년 대이동을 맞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루사의 피 색깔은 변해간다
노란빛이 섞이면서 오렌지 계열이 되면 ... 피부가
함초롬히 젖어들고 ... 이 상태가 오래가면 솜털이 형광빛으로
반짝이게 된다 . 사사가 상습으로 범하면서 루사의 몸은
자극에 혈관이 팽창하면 ... 스스로 환하게 발광해갔다

혈액에 푸른빛이 섞이면서 보라 계열이 되면 ...
몸 전체에 톤으로 나누어진 곡선이 만들어지면서
물결 치듯이 선이 움직인다 . 이 감당하기 어려운 아름다움
앞에서는 호색한 사사마저 ... 숨죽이며 바라보기만 한다
때로 바닥 모를 향수에 빠져 훌쩍이기도 한다

보라 상태에서 자극을 잘못 받아 노란빛이 섞이면 ...
루사는 호홉 곤란과 심장 발작을 일으킨다
결국 . 혈액이 잎새의 생명 초록빛으로 변하면 루사는
식물인간 상태로 돌아가며 생을 마친다는 것을
알아낸 사사는 ... 푸른빛이 돌면 응급 조치를 준비해둔다

코마 상태의 소년과 후장 성교를 위해 의학서적을 탐독하면서
꽃잎 생약을 개발해낸 사사는 ... 흙속에 묻힌 천재였다
시도때도 없이 항문 속에 정액을 쏟아넣고 ...
주사약과 복용약을 때맞춰 투약하며 ... 기적처럼
루사의 의식을 돌이키면서 사사는 어느새 의사가 되었다



병원은 영혼의 건물이다 . 영혼정서 건축으로 이루어진 병원에서
사사네 방 창턱에서 4층 중정까지 ... 영혼들이 꽃을 피웠고
어둠의 늪 복도 속에 4층 약제실과 3층 루사 방
사이의 계단을 트이게 하여 ... 병원의 아들
루사를 살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오늘밤 . 사사는 루사 몸에 푸른빛 피가 돌자
온몸에 압박 붕대를 칭칭 감아두고 병실을 나왔고 ....
약물에 취해 몽유 상태의 루사는 ... 꿈의 잔영을 따라
복도로 나왔다 . 절대 암흑 속에서 루사의 시야에는
여인 나체의 뒷모습이 허공속을 걸어가고 있다

그녀 ... 영혼 미미의 모습은 건널다리에서 사라지고 ...
루사는 문 열린 수술방 불빛 속으로 본능처럼 찾아든다
미미는 꽃잎 마약을 통해 루사 꿈 속에 들어갔고
루사의 꿈 이야기로 들뜬 스토커와 사사가
탐색자처럼 먼저 길을 열도록 하였다

건널다리에서 나는 미미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
미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 영혼에게는 생에서의
인과관계가 모두 지워져버리고 ... 공간에 남은
정서로 끝없이 떠돌며 ... 공간의 완결을 기다린다



열린 문 사이로 하얀 기둥처럼 붕대로 감긴 키작은
입상이 들어올 때 ... 아라는 나비의 날개 소리를 듣고
수술대에서 내려온다 . 모시나비가 붕대 소년 루사 머리위를
반가운듯 빙글빙글 날자 ... 아라는 이 하얀 물체가
자신의 남자라는걸 알고 가만히 손을 내민다

열일곱살 아라와 열다섯살 루사는 수술부 01O방에서
서로의 손을 잡는다 . 루사는 이 발가벗은 대머리 미녀가
낯설지 않다 . 꿈 속의 뒷모습 여자와 겹친다
닥터와 간호사 외에 여자를 본 적이 없는 루사는
꿈과 현실의 발가벗은 두 여자를 혼돈할 여지가 없다

아라는 루사의 머리 꼭지에서부터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을 위해 일을 해보는 아라는
수줍음으로 나신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 얼굴에
붕대가 풀리면서 별빛 같은 눈의 미소년이
또박또박 점을 찍듯이 첫 말을 던진다

"나 는 지 금 아 프 지 않 아 ... "



건널다리 끝에서는 엉덩이를 까고 잠든 스토커가
쓰러져있고 ... 입구쪽에서는 복도를 못 건너간
사사가 잠들어 있다 . 바닥에 흐르는 물은
더 많아졌지만 두사람은 깨지 않는다

날이 샐때까지 그치지 않는
건널다리의 물기는 .....
잠을 달랠만큼 따뜻하다



2004 . 3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