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꽃잎 죽은 남자
by RAN



장미숲 속에 하얀뱀이 지나가는 꿈을 꾸었다
눈처럼 하얀 몸통 위로 꽃잎이 뚝뚝 떨어져 덮여갔다
보호색을 잃어버린 변종 . 기형 하얀뱀이 ....
기적을 기다리는 드라마틱한 사람들에게는
영혼의 빛 . 신의 선물 . 무한마성의 재림이 되기도 한다



연애질에 닳고닳아 심미에 미치던 아몽 상류사회에서는
투명하도록 눈부신 몸에 털이 전혀 없는 ...
아미네 집안 여자들을 순수의 향수 . 기적의 완결로
받들었다 . 신비한 베일 속의 아름다움이
전설처럼 도시를 떠돌아 다니면서 ....

당연히 . 모방 미녀들이 생겨났다 . 연예계에는
온몸의 털을 몽땅 뽑아버리는 수술이
성공의 한 과정처럼 되었고 ... 유흥가에는
'아' 로 시작되는 이름의 인조 대머리 여성들이 널려 있었고
털 제거방이 인기 있는 뷰티케어 업소로 자리잡았다

어린 소녀들이 무리하게 털을 제거하다 피부 발작을 겪고
털 제거약 부작용 또는 끝없이 자라는 털 때문에
자살하는 사건이 사회문제로 비화되곤 했지만 ...
아름다움을 위한 이 도도한 물결은 ... 거부 못할
순류로 ... 지극히 아몽다운 흐름이었다

섹슈얼리티 너머 영원한 미소녀 판타지가 비벼진 신화의
실존을 직접 본 사람은 한동안 뉴스메이커가 되었다
신비함은 겨드랑이 털처럼 속절없이 자라나 ....
아미가 인어라는둥 ... 해가 뜨면 꽃으로 변한다는둥 ...
유행가 가사에서 시인의 명상록에까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아미의 네 쌍둥이중에 ... 아리와 아루 . 아라와 아로는
두 세트의 찻잔처럼 성격도 체질도 달랐다 . 도발한 야성의
아리와 아루는 열세살이 지나면서 화류계로 나와 ...
쉬임없는 염문을 뿌리고 다녔지만 ... 아라와 아로는
병원 귀빈병동을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화류의 부작용을 물려받은 아로는
늘 병을 달고 살았는데 .... 아라는 별다른 병이 없었지만
이상 화류의 증후들이 너무 빨리 자라나면서 ...
아몽 병원 성의학 팀에서는 아라의 몸이
남성에게 치명적인 그물꽃 구조라고 진단했다

대책이 없었다 . 네 자매 중에서도 살인적인 미를 지닌
아라는 ... 집안 내력대로 아미의 후계자이자 아몽 화류계
퀸의 계보를 이을 별이었지만 ... 테라스 병동 유리벽에
갇혀서 살아왔다 . 남성 스텝들은 물론 여성들까지
아라를 본 사람은 ... 그 압도하는 아름다움에 질려서

심각한 불면증이나 알코올중독 따위에 시달렸기에 ...
아라 담당 의료진들은 여성혐오 닥터나 노파 간호사 뿐이었다
물릴 수 없는 외모 때문에 비운을 숙명처럼 알고 커온
이 천상의 미녀는 ... 가운 걸친 닥터들이 미웠고 ...
환상의 놀이동산 같은 병원을 늘 꿈 꾸었다



전업 깡패에서 닥터로 생애의 대전환을 빈병원에서 꿈 꾸는
사사는 ... 루사로부터 건널다리에서 발가벗은 여자를
봤다는 말을 듣고 하루종일 성기를 쥐어짜며
고민하다가 ...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암흑 복도를
지나온다 . 피부를 짓누르는 차가운 습기에 헛구역질 하면서

끝내 . 수술부 입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 병원에
누군가의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 서병동
옥상에서 스모크 핑크빛 천들이 나부끼는걸 보았고 ...
바람에 실려 여성용 환자복 바지가 날아온 적도 있었다
깡패다운 선제공격으로 병원을 장악하리라 목표를 세우고 ...

이빨 가루나게 악물고 공포를 헤쳐온 사사는 수술실
01O 방 문을 열고 ... 수술대에 누워있는 대머리 미녀를
보자 ... 똥꼬를 얼음에 찔린듯 소름에 휩싸인다
진동 기관처럼 몸을 떨면서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가 살아있다는걸 확인하자 ... 사사는

한번더 지독한 소름으로 몸서리친다 . 환장할 완벽함이다
범접 못할 지존의 빛이 살기처럼 서늘한 몸매 ....
카바레나 팰리스바를 주름답던 모조 미녀
아망 . 아슈 . 아키 ... 따위랑은 결코 다르다 . 그럼 ...
전설처럼 병원에 갇혀산다던 ... 바로 그녀인가 ...



번민하면서 사사는 또한번 인생 대역전의 통박을 굴린다
시장도 건축가도 영화감독도 만날 수 없었다던
당대의 미녀를 차지해 보리라 ... 닥터처럼 ..
시트를 들치고 진료하듯 아라 몸을 더듬다가 ... 환상의 피부
촉감에 덜덜 떨다가 ... 무방비 주물탕으로 변해가고

스스로를 잠깐씩 배반하는 복합적인 손놀림을 따라가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채 사사는 머리를 흔든다
꽃향기 가득한 아라의 음부에 코를 박고 .....
이 꿈 같은 미녀를 자신의 그릇으로 단번에 따먹기는
무리라는걸 감지하면서 ... 영리한 사사는

체온을 재고 피를 뽑고 차분히 차트에 아라의 상태를
기록한다 . 어쩌면 마취 상태가 아닐지 모르지만
천천히 지켜볼 수 있으리라 ... 마음 다잡고 수술방을 나선
사사는 .. 물이 차오른 건널다리 바닥에 엉덩이 까고
쓰러져 잠든 스토커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



다시 01O 방으로 돌아온다 . 이대로 가버리면 머저리
책벌레 스토커가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자
사사는 가운 주머니에서 비장의 약병을 꺼낸다
루사랑 후장 성교의 윤활유 . 직접 개발한
생약 성분의 최음 젤을 ... 아라의 음부에 꼼꼼하게 바른다

깡패 무리에서도 주먹보다는 맷집과 지능으로 버텨온
사사가 끈기있게 아라의 반응을 기다리는데 ...
외음부가 라벤더 꽃잎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면서
하얀 꽃술이 물기속에서 하늘거리며 돋아나고 .....
다리 사이에 만개하는 꽃의 정경에 입 벌리고 빠져있던 사사는

찢듯이 가운 벗고 잽싸게 수술대에 올라 ... 펼치듯
성기를 꺼내보지만 기이한 꽃모습에 질려 쫄아들면서 ....
다급하게 아라의 젖가슴을 주무르자 ... 손바닥에
짓물려있던 젖꼭지가 ... 오렌지빛으로 변하며 ...
전극이 들어있는 꼬마전구처럼 환하게 밝아온다

한참동안 . 꽃이 핀 외음부와 빛이 들어온 유두를 번갈아
수습하듯 ... 황당한 애무를 하지만 ... 사사의 성기는
풀죽은 형상의 원위치에서 움직일줄 모른다
즙에 젖은 꽃잎에 핑크빛 꽃술이 도발한듯 목을 빼고 버티는
아라의 음부 앞에서 ... 절망하는 사사의 눈이 젖어간다



아라는 잠들지 않았다 . 눈을 감고 전령 나비가 전해주는
날개 소리를 들으며 ... 남자의 몸이 떨고 있고 ...
손길이 늙은 닥터들과는 다르다는걸 느낀다
한순간 . 다리 사이로 뜨거운 여름 갯벌바람이 밀려와
가슴을 타고 몸의 꼭지에서 기슭까지 퍼져나간다

병원에 살면서 턱없이 많은 검사와 치료를 받아왔지만 ...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 더운 밤안개처럼
얇은 막이 짓누르며 휘감기듯 ... 온몸을 감싸고 ...
남자의 촉감이 아랫배에 얄궂게 미끈거리자
아라는 슬픈 인턴 가비가 생각난다

인턴 가비는 당직 밤이면 ... 아라의 체온을 재다말고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곤 하더니 ... 어느 겨울
테라스 병동 발코니에서 투신해 죽고 말았다
가랑이 앞에서 남자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듯 해서 ...
아라는 잠시 걱정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

딱 벌어진 어깨 서럽게 들먹이며 수술실을 나가는
닥터의 뒷모습을 본다 . 차오르는 연민속에
비젖은 쓸쓸한 저녁처럼 속절없이 식어가면서 ...
아라는 남자가 죽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다

닥터 이외의 남자를 본 적이 없는 아라는 ....
닥터는 때로 스스로 열망하다 절망하는 날벌레 같고
때론 .. 전율을 숨기는 딱정벌레 같다고 생각한다



이밤의 성교 실패가 영원한 고독의 덫이 된다는걸
사사가 모르듯이 ... 경배 같은 자위와 호소 같은 애무의
두 남자가 ... 영원한 사랑 오페라의 서곡처럼
필요했다는걸 .... 아라 역시 모른다

복도의 지독한 어둠처럼 ... 관계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이어지고 ...
01O방 문이 조금 더 열린다



2004 . 1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