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에서 죽다
by RAN



폭우 쏟아지는 창가에서 종일 오래된 노래를 듣고있다
술잔을 비우고 .... 내가 왜 이 버려진 도시에
남아있는지 조금이라도 밝혀야겠다
조용히 걷는 남자 란이라 불리는 나는 건축가다



지난날 . 대지를 한없이 숭배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몽에는 경미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서 ... 때로 잠에서 깨면
현관이 땅속에 묻히고 ... 우물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
옆방 하나가 통째로 개집처럼 마당밖에 나가있고 ...
이런 일들이 아몽인에게는 낯설지가 않았다

대지의 비위를 맞추려고 모진 노력을 하였고 ...
발을 대지에 묻고 있는 건축물에 정성을 쏟으면서 ..
자연스레 건축이 아몽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 사람들은 ...
저녁밥만 먹고나면 ... 오늘밤 내방이 그대로 있었으면 .. 하는 마음에
집안을 둘러보고 도면을 확인하곤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왠만한 도면들은 다 볼 줄 알았고 ...
고3이 되면 복잡한 트러스 구조설계도 한나절이면 해냈다
건축과 국어만이 입시과목이었는데 ... 사실 건축에는
수학 . 과학 . 철학 . 윤리 . 외국어 .. 모든게 다 포함되어 있었고
건축부 수장이 행정과 교육을 총괄하고 있었다



공간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도시의 정서로 자리해서 ...
장소마다 깃들인 감성을 간직하려 애썼고 ...
시적인 관습으로 ... 기억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삶은 죽음의 가호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
죽음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몽 윤리의 꽃이었다
가정집마다 벽 속에 죽음 회벽 공간을 만들어 ....
이승을 떠나면 벽속의 영혼이 곁에 머물면서
가족의 안녕을 지켜주리라 믿었고 ... 언제나 벽을 깨끗이 닦았다

아파트 . 병원 . 호텔처럼 너무 많은 죽음이 있는 곳에서는
건물에 가까운 묘지가 건축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길위의 죽음은 길에 묻고 ... 익사한 사체는 육지로 들이지 않았다
투신자살을 하면 떨어진 그 위치가 설령 .....
누군가의 상점이라도 죽은자의 무덤을 위해 몽땅 넘겨야 했다

전래의 신조로 ... 아몽에서는 자살을 올곧은 선택으로 받아들여서 ...
죽음이 가까워오면 스스로 벽속에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고 ...
회벽 방에서 질식해가며 운명을 달리하는 것이
가족의 명예라서 ... 자식이 늙은 부모를 벽속으로 밀어넣어도
살인죄가 아니었다 . 영원히 안전한 집을 위해서 ....

간절한 믿음에는 응답이 찾아와 ... 집을 오래 비우면 ...
문들이 저절로 굳게 잠기면서 폐쇄되어 갔다
영혼이 집을 차지했다 ... 라고 건축학에서 지칭하는 이 상태에는
벽속에서 소리가 들리고 .. 공간이 깊은 암흑에 빠져서
주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집은 폐허가 되고말았다



건축가가 된다는 것은 아몽 하늘에 별이 되는 것과 같았다
한해 9명만 뽑는 아몽대 건축과에 들어오려고 ...
해외의 석학들이 몇 년씩 재수를 하는건 예사였다
철학과 예술의 중심에 서있던 건축가들은 ...
광신에 가까운 팬 집단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이었다

수준도 그만큼 눈부실 정도여서 ... 고층건물들은 지진이 오면
자동으로 방들이 구조에서 이탈해 굴러다니면서 ...
안전한 위치에 머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장실이 주차장 가운데 있고 ...
수위실을 승강기 안에서 꺼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축복에는 언제나 굴레가 따르는 법 ...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과 운명을 함께해야 했다
건물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기능을 잃으면 ...
건축가도 생명을 스스로 끊었고 ... 그런 최후를 위해
건물 속에 비밀의 회벽 공간을 만들어 넣었다



1971년 . 대이동을 앞두고 건축가들의 마지막 회의가 있었다
우리는 ... 세명의 신인 건축가만 미래를 위해 보내고
전부 건축물과 운명을 함께 하자고 결의하였다
물론 ... 인간의 일을 누가 알겠나 ... 하지만 나는 믿는다
진정한 건축가들은 벽 속에서 질식해갔을 것이라고 ...

나는 . 내 걸작 아몽 종합병원에서 생을 접으리라 다짐하고 ...
하루동안 본관 앞 뜰에서 울었다
삶에 미련은 없었지만 ... 이 대병원을 어둠속에 묻고
떠나면 ... 죽어도 절규만 할 것 같았다
내 청춘의 시간들이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는 병원에 ....

새벽이 오고 ... 비상용 승강기옆 비밀 회벽방에 가려고
뒷뜰로 돌아가다 스토커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놀랍게도 ... 환자와 의사가 남아있다고 전해주었다
병원은 죽지 않았다 . 환자와 의사가 있는한 ...
그들이 떠날때까지 내 생명도 거둘수 없다

그들은 나를 보자 ... 구원의 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아몽에서 건축가는 어디서나 전능한 지배자로 받들어진다
그들은 내가 있는한 병원에 미래가 있다고 믿겠지만 ....
솔직히 ... 난 그들 덕에 생명을 연장했을뿐 ...
둘 중 하나만 죽으면 나도 가야한다



환자 하나 . 의사 하나 . 스토커라는 구경꾼 하나
자살할 회벽방 청소나 하고 사는 나
우리는 이렇게 서로가 살아있음을 엿보면서 ....
시간을 잊고 공간만 붙들고 ...
어둠속을 맴돌고 있었다



2003 . 8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