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의 바람개비
by RAN



어디선가 1966년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환청일까 . 아니다 . 아몽의 벽들은 소리를 기억한다
지나간 시간은 영혼과 함께 건축물 속에 남아있다

예감한대로 . 아몽 종합병원의 모든 공간은 어둠에 빠져들었다
단 한군데의 파손도 균열도 없이 ... 스스로
폐쇄되어 갔다 . 투영을 포기한 유리창이 빛을 가리고 ...
복도는 한없이 깊은 암흑에 사로잡혔다
어디 하나 잡힐 데도 움직일 방향도 없었다

벽 사이 층 사이 ... 공간 사이의 길을 아는 사람은 나 뿐이다
건축가는 . 운명의 덫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사람들이 조용히 걷는 남자라고 하는 ... 내가
혈관처럼 퍼져있는 작은 통로를 지나 그들에게 다가가면 ...
그들은 나를 보면서 구원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병원에는 본관 3층에 두 남자 루사와 사사 ...
동병동 응급실의 히레 일당 . 격리병동에 달팽이와 기형인간들
서병동 3층에 아라와 미녀들 . 지하 영안실에 하우 .....
그리고 하나씩 방을 차지한 고독들이 있다

버려진 도시의 병원에 남겨진 이들은 ...
비정상이라는 한결 같은 속성을 지니고 서로를 찾지만
공간은 바닥을 모르는 물처럼 덧없이 막혀있어 ...
격리된채 서로의 속살을 파며 살아간다



쓰일데 없는 공간이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해가면서
아몽에는 시간이 멈춰섰다 . 3년 . 10년 . 어쩌면 ....
30년쯤 지났을까 ... 아몽에서는 누구도 늙지 않았다
루사는 여전히 열일곱살 ... 사사는 스물아홉살 그대로이다

어떤 시계나 달력이나 1971년 8월 31일에서 머물러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 약효 시간 . 주사약이 다 떨어지는 시간
성교와 성교 사이 . 사과가 떨어지는 기간 등으로 ...
얼마쯤의 변화를 표현할 뿐이다 . 무엇보다
이들에겐 과거나 미래 따위가 아무런 필요가 없다

잠을 깨면 무한히 방치된 낮과 밤이 한번씩 있을 뿐이다
짐작이나 예감을 해야할 생활이 없다
통행이 가로 막힌 공간 속에서 ...
눈 앞에 자라나는 식물 또는 지나가는 동물을 먹으며
거부할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대부분이 병을 달고 사는 이 사람들에게 ...
생의 버팀대가 되어주는 것은 ... 끝없는 성욕이다
기막힌 우연처럼 남자와 여자로 딱딱 나누어진 구역에서
처음 얼마간은 이성을 찾아서 미칠듯이 헤맸지만 ....
공간의 섭리를 거역하면 돌아올 저주를 감당할 길도 없었다

모진 생존력으로 이들은 동성애의 열락를 찾아냈다
깡패 사사와 정키 닥터 히레와 창녀 마다 ....
세사람은 성교의 불티를 끊임없이 지펴냈다
성욕으로 그들은 행복했고 평화로웠다

이성을 찾지않고 성욕을 자급하면 할수록 ...
공간은 완강하게 폐쇄되어 갔다 . 다시는 열리지 않도록
검은 늪이 통로를 가로막아 갔다 . 공간은 언제나
인간보다 먼저 관성의 굴레를 만들어간다



스토커는 홀로 사과밭을 가꾸며 살아간다
병원에 올 일 없는 건강한 이 남자는 닿을데 없이 외롭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손대지 않아도 잘자라는 사과를 따거나 ...
도서관에서 쓰일데 전혀 없는 지식을 담거나
유일한 친구인 불치환자 루사를 만나는 것 뿐 .....

밤이면 안개에 취한 카스타드빛 달을 보면서
몽싯몽싯 자위하는 그는 아몽을 대표할만한 자위광이다
그는 동성애를 거부하고 언제까지나 여자를 그리워하는 몽상가
사과와 달 . 풍만한 모든것에 몸부림 친다

감성 짙은 눈빛에 슬림한 바디라인의 그는 ....
한번도 여자를 가까이해 본적이 없다 . 용기가 너무 없고
무엇보다 그는 자위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었기에 ...
대이동의 날 아몽역에서 매혹적인 여인을 만나고
그녀를 보다가 아몽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실재하는 여자는 절망 같은 거리를 안겨 줄 뿐
유혹도 배반도 없는 버려진 도시에서 실컷 자위하다 죽자
물컹하기만 하던 생애에 단한번 확고한 다짐을 하고
당연한 결론으로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여자를 잊지 못하는 그는
자위의 매카니즘 그대로 표리배반의 매순간을 살아간다

그에게 자위는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단순하며 직렬하며 투영되다가 ... 금방 다른 상태로 변한다
시작과 끝 . 안과 밖이 전혀 다른 두 시점 사이에서
그는 진지하고 경건하기 짝이 없이 자위한다
성교는 그의 우주 밖에서 도는 별이다



하릴없이 성실한 그는 새벽이면 잠에서 깨고 ....
매일밤 여섯번의 자위로 퉁퉁 부은 성기를 샘물에 깨끗이 씻고
맨날 사과만 먹어서 신선처럼 투명한 얼굴도 씻고 ...
깔끔하게 면도하고 셔츠와 바지와 자켓 모두 까만빛의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 그는 아몽의 시계다

오전 내내 추운 나라의 소설을 읽고 ...
구운 사과를 먹고난 오후에는 열대 건축학 책을 읽고 ...
창으로 햇살이 기우는 시간이면 개인 열람실에서
백과사전의 여성편을 깡그리 외운다

스치는 모든것에 꼴리는 미망의 스토커
그에게 도서관은 음기 충만한 공간이 되어준다
닫긴 문이 열리면서 햇살 가득 은빛 먼지를 피우고 ...
깊숙한 밀실에 등불 켜면 동그란 속살이 너울거린다

여성의 생식기 천연색 그림에 손가락을 문지르며
그는 갓배운 외국어를 나열해나간다
마법의 주문처럼 단어들이 색기위를 동동 떠다니고 ....
룸과 살롱을 중얼댈 때 문득 전위사정을 한다



룸은 길쭉한 여성 생식기 . 살롱은 그 안에 작은 귀
룸은 깊고 어두운 터널 . 살롱은 그 앞에 초인종
룸은 가만히 열린 속 . 살롱은 그 곁에 눈 ....
스토커는 주름진 여성 성기를 그렇게 루사에게 설명해준다

실체의 여성을 전혀 모르는 두 남자 ....
스토커의 애타는 분홍빛 지식이 루사의 무방비 환상에 전해지고
룸살롱은 여자를 이야기하는 결론으로 이르게 된다

정상인들이 버리고 떠난 도시 종합병원에서
지금부터 펼쳐나갈 긴 이야기는
이런 속주름으로 시작된다



2003 . 10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