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속에 사시미
by RAN



하나의 건축물처럼 한번의 운명은
들어설 이유를 가지고 있다
바닥과 기둥이 맞춰지고 지붕이 얹혀지면서
지난날 빛은 조금씩 가리워진다



1971년 4월 15일 . 도시를 흔들었던 학생 데모의 주동자로
아나고가 구속된다 . 1960년 비틀즈 혁명이후 ...
권력의 중심이었던 존당이 1968년 선거에서 폴당에
정권을 넘겨주었다 . 시장경제를 내세운 폴당의 독재에
항거하며 . 자유와 분배 사상의 존당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왔고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아몽 의대생 아나고는 감옥에서 구원의 빛을 만난다
주임교수 히레가 시장에게 낸 청원서에 의해
특별사면 된 것이다 . 학교로 돌아왔지만
스물네살 아나고에게 청춘의 빛은 사위어갔다

드러머와 소아과 의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나고는
신동이었지만 ... 불운하게 건축 영재학교에 낙방하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 열세살에 세꼬시스라는
락밴드를 결성했고 . 열일곱살에 '사시미사운드와 응급수술론'
이라는 논문으로 아몽 의대에 특별 입학한다



비틀즈학의 주류였던 사시미학파는 존당의 몰락과 함께
사라다학파에게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 다섯살때부터
하루 다섯번 존레넌에게 기도를 올렸던 아나고는
골수 존당원이자 사시미소년단 간부로 자라났다
사시미란 영적인 라이브사운드를 일컫는 로큰롤 용어다

음악과 연주자가 정점에서 순간적으로 영혼 교감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금단의 음역으로 돌입하는 사사미사운드에는
음악의 실체와 영혼 사이에서 연주자가 살아있는
음원의 육질과 혼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
음의 뼈로부터 감의 살을 발라내는 지고의 기량이 요구되었다

1960년대에 사시미는 문화 전반의 키워드로 자리했다
예술과 철학은 물론 건축에 있어서도 구조의 뼈대로부터
마감의 살을 언제든지 홀라당 발라낼 수 있는
무한가변 공법이 주류가 되었다 . 하룻밤 사이에
직업학교가 패션몰로 바뀌어버리기도 했다



폴당 정권은 신선도를 강조하는 사시미 문화를 배척했다
시장경제 유통체계의 장애세력으로 탄압 받으면서
사시미가 숨어들어간 변방에서 ... 물고기를
날로 먹는 풍속이 번져갔다 . 보수정권도
음식문화는 어찌할 수 없어 방관하였다

대학 사시미 연맹의 핵심 운동권이었던 아나고가
세꼬시스를 이끌며 시위공연 하면서 발표한 첫 싱글
'안하고 어디가'는 선동적인 노랫말로 금지곡이 되었지만
저항운동 상징 노래가 되었다 . 대학가의 별
아나고는 아몽 예대 발레리나 사라와 사랑에 빠진다

겉으로 빛나 보였지만 아나고는 우울했다 . 뻑하면
수배에 쫓겨다녔고 ... 힘들게 만나는 사라는 아몽인다운
화류기질로 발레리노들과 거침없이 관계를 맺곤 했다
실연병 경력은 의사자격 시험의 결격 사유이기에 ...
아나고는 미친듯이 저항운동에 매달렸다



아몽 의대병원 신경외과 과장 히레는 사시미학파의
거두였다 . 그는 사시미의 영혼 교감 연구에 몰두하면서
뇌신경 이식분야에 독보적인 석학이 되었다 . 폴당에서
히레의 연구활동을 규제하기 시작하면서 ... 그는
인간이 변해갔다 . 연구실에 마약류가 반입되기 시작했다

인간경영에 탁월한 리더 히레는 마약 커넥션 필마장파와
깊은 관계가 있으면서 ... 아몽 경찰청 마약수사본부
자문교수로 행세했다 . 경찰에 몰수된 마약이 필마장에게
돌아가는 ... 삼각 거래의 한 꼭지점에 그가 있었다
대이동을 앞두고 시정부에서는 대대적인 마약단속에 나섰다

컨테이너 분량으로 압수된 마약 처리로 고심하던 경찰에
자문교수 히레는 회심의 제안을 한다 . 도시를 깨끗이 비우기 위해
마약을 바다에 버리자는 것이다 . 음산한 천재 히레는
생애를 건 도박을 시작한다 . 영원한 사시미 제국의 첫발로 ...
그는 마약의 바다를 지배하는 영주가 되려한다



대이동 발표 이전부터 히레는 도시에 남기로 결심했다
그는 사시미 병원을 꿈 꾸었다 . 병원 전구역에 수술실이
걸쳐있어 수시로 모호한 육신을 열고 닫으며 .....
영혼 전이와 생체 분배의 외과 천국을 함께 이루어낼
정예의 잔당들을 남몰래 찍어놓고 있었다

7월 15일 . 대이동 최후의 날을 한달 남겨두고 병원은 일부
중환자실과 응급부를 제외하고 폐쇄된다 . 닥터 히레와
제자 8명과 3명의 남자 간호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응급부 담당을 지원한다 . 이들은 무한 의리를 자랑하는
히레팀으로 간호사들은 뇌수술을 받은 환자들이다

8월 8일 . 응급 격무에 시달리던 아나고는 사라에게서
노랑머리 짝코 발레리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고백을 듣는다
그밤 . 당직 아나고에게 응급분만 환자가 왔다
양수가 터지고 어깨가 걸리는 난산에 하혈이 이여지고 ....
아나고의 시야에는 끝없이 사라의 몸이 겹쳐졌다



산모가 안정을 찾자 아나고는 응급부 후문을 나와 ...
언덕길을 넘어 해변으로 나왔다 . 북쪽 병동을 면한 바다는
튀어나온 바위 벼랑 가운데에 말굽처럼 들어간 오목한
모래밭이 있어 ... 동굴바다 또는 자궁바다라 불리기도 하였다
밤파도가 기약 없는 양수처럼 몰려오고 있다

레몬빛 달이 수평선에 마취하듯 흐린 빛을 풀어놓고 ...
잔물결 발 적시는 모래밭에 주저앉아 아나고는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 피범벅 가운이 해풍에 펄렁이고 ....
갯내음에 실려 하얀 안개가 쏟아부은 것처럼 밀려온다
코를 찌르는 아득한 향에 아나고는 고개를 든다

안개가 아니다 . 하늘 가득 새하얀 입자들이 점을 찍으며 ...
아나고의 가운에도 내려온다 . 서너번 재채기를 하면서
온몸이 허물을 벗듯이 가벼워진다 . 눈물 맺힌 눈에
밤하늘이 은하수 바다가 되어가고 ... 반짝이는 하얀 빛들 위
보름달에 뼈가 비치는 물고기가 들어가 있다



사시미다 . 해안선을 덮은 새하얀 가루 기적의 바다에서
날이 밝을때까지 아나고는 파도를 넘나들며 막춤을 추다가
기슭에 엎어져 잠든다 . 컨테이너 분량의 마약이 직경 150미터
만에 쏟아졌고 . 홀로 그 바람을 다 마신 아나고는
48시간 실신에서 깨어나자 ... 영원한 마약쟁이가 된다

히레는 계획한대로 제자들에게 과제를 내린다 . 만의 양단에
촘촘한 저인망을 쳐서 해안을 봉쇄한 것이다 . 마약냄새에
몰려온 물고기들이 공중전 하듯 수면위를 날아다니고 ...
전어와 넙치가 하늘로 튀어올라 구름속에 숨고
환장한 어폐류들 거품으로 파도가 제풀에 까뒤집혔다

8월 12일 . 응급부 마약물고기 만찬 석상에서 12명의
히레팀 남자들은 병원을 지키기로 결의한다 . 그 중에는
인육을 먹고 제적당한 히라스와 전신마취 강간수술
호모 부세와 병원장 인질극 도다리 등 ... 골통
사시미 수재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8월 15일 . 하오 다섯시 마지막 정기열차가 아몽역을
출발할 때 ... 열두명 외과 전사들은 승강장에서 ...
보름달속에 물고기가 그려진 사시미 깃발을 흔들며
'안하고 어디가'를 합창한다 . 기차가 사라지고
남자들이 어깨동무 한다 . 살아서 기다리마 ....

바다와 가까운 응급부에서 실천의지 사시미론과
강령에 따라 ... 서로 몸을 절개해 내장에 손대면서
그들은 영혼교감에 빠져들었다 . 병원에 겨울이 오고 ...
복도가 급속히 폐쇄되면서 응급부는 섬이 되었다



응급 승강기가 3층에 도착했다 . 수술부
문이 열리는 동안 비어있던 의식이 채워진다
그들은 살아 남아 돌아온 것이다



2004 . 4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