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혈한 달의 꽃
by RAN



어두운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17살 볼빨간 간호사 미미의 ....
실내화 끌리는 소리위로 은은한 허밍이 지나간다



지금 병원이 있는 자리에는 1961년까지 병상수 70개의
여성병원이 있었다 . 붉은 벽돌과 아이보리빛 콘크리트가 부드럽게
만나는 그 건물은 지금 별관 기숙사동으로 남아있다

지난 시절 여성병원은 닥터와 환자와 직원이 전부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전용병원이었다
서병동 아라 자매들은 1954년 그 병원에서 태어난 네 쌍둥이로 ...
엄마 아미로부터 꽃피병이라는 ... 내림병을 물려받았다

속칭 선천성 화류과다증이라 불리는 이 병은 ...
피 속에 꽃가루 성분이 섞여있어 ... 성장과 함께 피가 서서히
꽃으로 변해가면서 심장이나 기도를 막으면 죽게된다
스무살이 되기전에 온몸이 꽃으로 뒤덮인채 흙으로 돌아가는 병이다

모계 유전병으로 ... 아미는 열아홉살 나이에 쌍둥이를 낳고 죽었다
아몽 지존의 화류계 집안 마지막 딸 그녀의 임종에 ....
시장이 장례식 장이었고 영구행렬이 끝없이 어어졌었다
아미의 재색을 이어받은 네 딸중에 ... 셋째 아라가 짱이었다



아리 아루 아라 아로 . 자매는 어릴때부터 몸에 털이 전혀 없었다
초경 나이가 되면서 털이 있을 부위에 꽃잎처럼 ....
은빛 솜털이 나와서 빛을 받을때마다 색깔이 달라졌다

새순처럼 . 오렌지처럼 ... 때로는 라벤더처럼 ...
창백한 얼음 미모에 스민 환상의 빛이 ... 애상에 잠긴듯해서
누구나 . 순수의 동경 . 한탄할 완벽함에 탄식하게 하였다

대이동 시절 . 아라는 엄마의 영혼이 있는 병원에 남기로 했다
시의회 원로들까지 돌아가며 설득을 했지만 ...
병원에서 자라다시피한 아라의 집착을 꺾을 수 없었다
영롱한 보석들을 빈병원에 남기고 그들은 떠나갔다

서병동 3층 복도끝 방에 남아 아라는 ... 먼저 환자복을 벗었다
한그루 나무처럼 . 그후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네개의 하얀벽 안에서 ... 스스로 거울이 되어 ...
우매한 시선 다 버린 절대 공간의 꽃으로 피어났다
세자매도 아라를 따랐고 ... 네개의 방에서 ...
자유와 고독은 . 비할데 없이 투명한 . 빛이 되었다

발코니를 타고 내려가 늪지로 변한 뜰의 흙을 퍼와서 먹으며
창가에 앉아 정물처럼 낮을 보내고 밤이 오면 ...
창백한 달빛 아래서 아라는 각혈을 했다

새하얀 꽃잎들이 뭉클뭉클 쏟아져 ... 바닥에 떨어지면 ...
줄기가 나와 ... 병실안은 꽃으로 뒤덮여갔다
벽에 . 침대에 . 창턱에 ... 나비들이 아라와 함께 살았다



건널다리 집수 배관에서 물이 조금씩 스며나오기 시작한다
양면에 창이 나 있는 이 다리에는 천정가 배관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나와 유리창을 맑게 하는데 ....
때로 달빛이 고혹적인 밤이면 ... 물기가 넘쳐나와 ...
바닥에 찰랑일만큼 차오르기도 한다 . 이러한 건축을

아몽에서는 영혼정서적 건축이라 한다 . 죽은
영혼을 그리워하며 심신을 바쳐 건물을 계획하면 ...
건축은 영혼의 환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 그 개론이다
지금은 서병동 - 가슴이 감성적 자극을 받아서 ...
건널다리 - 외음부가 반응을 하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병원 설계가 꿈이었던 나는
여성병원을 들락거리다 ... 간호사 미미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
깊어가던 사랑의 새벽에 . 미미는 발코니에서 투신하였다
아몽에서는 사랑 혹은 미의 절정에서 청춘이 ...
목숨을 끊는 것은 심미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슬픔에 빠진 나는 3년후 같은 병원 의사 지지를 사랑하였는데
그녀는 의료 사고 책임으로 음독 자살하였다 . 건축 일을
시작하던 해 . 동거하던 나오미는 ... 결핵이 깊어 ....
이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 그후 십년동안
나는 사랑을 잃고 일에만 매달렸고 ... 꿈에도 그리던

아몽병원 수석 건축가가 되었지만 ... 조건축사 모나가 ...
피어나던 사랑의 어느밤 . 옛병원 뜰앞 호수에서 익사하였다
그녀의 죽음이 자살 혹은 과로로 인한 실족사였는지 ...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 아몽에서 중년까지
살다보면 ... 나처럼 기구한 인생은 드문 일도 아니다



일생동안 사랑하던 네명의 여자가 모두 이 곳에 묻혀있고
내 사랑 한번도 이 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
나는 내 영혼을 걸고 영혼정서건축을 하였다

철야 백일을 넘겨 탈진하던 어느밤 . 환영을 따라가게 되었고
그녀들의 영감이 내게 전해져 ... 사흘밤 스케취한 그녀들의 그림이 ...
병원의 축척과 도면과 계산이 되었다 . 그리하여 늪처럼 깊은 ...
어둠속에서도 나는 그녀들을 의지해 걸어가는 것이다

건널다리가 흠뻑 젖어가고 여성의 숨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온다
미미의 소리다 . 통로 공기에는 미미의 살내음이 난다
나는 미미의 그리움속에 미칠듯이 안기고 싶지만 ....
아라가 복도를 걸어오기에 몸을 피해야겠다

서병동 복도의 암흑을 아라는 주저없이 통과해 나온다
아라는 물론 비밀통로를 알 턱이 없다 . 그녀는 ....
모시나비의 날개소리를 따라 걸어오는 것이다



나비는 아라의 친구며 엄마다 . 나비는 전조가 되고 ...
메시지가 되고 가이드가 된다 . 아라를 지켜주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 깊은밤 아라가 각혈한 ... 달의 꽃 ...
그 꽃이 자라난 병실에 사는 나비들은 복도를 가득
메울만큼 많다 . 사랑에 민감한 전령나비가 ... 화창한 한낮에
본관 4층 사사네 발코니 화단 메꽃속에 앉았다

사사는 그 메꽃을 갈아서 증류한 성분으로 루사 주사약을 만들었고
나비가 전해준 아라의 꽃가루가 몸에 퍼지면서 ... 루사는
꿈속에서 아라와 건널다리를 보고 ... 몽환에 취해
기적처럼 복도를 넘어 다리까지 다가온다

아라는 밤마다 잠도 안자고 노는 몽유병 모시나비를 따라
절망같은 어둠속을 헤치고 서병동을 빠져나와
건널다리로 나온다 . 아라와 루사 .....
처음본 별자리처럼 서로를 바라보다가 ... 루사는 의식이
하얗게 증발되면서 비틀거리며 중환자실로 돌아간다

물이 첨벙대는 다리를 건너온 발가벗은 아라 ......
무한 암흑에 재빛 습기가 물컹 스며들면서 ... 그녀 앞에
수술부 미닫이문이 돌짝처럼 삐걱이며 느리게 열리고
01O 수술방 반쯤 벌어진 문 안에 등불빛이 삼킬 듯 일렁인다
나비가 먼저 날아들고 ... 아라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창가 달빛이 수술복도에 유혹처럼 파고든다



아라와 루사는 열일곱살 . 미미도 열일곱살에 죽었다
중앙진료부 . 중환자실에 루사가 있고 ...
건너편 수술실에 아라가 들어왔다
나는 중앙진료부를 미미의 영혼으로 설계하였다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랑이 시작되는 밤
건널다리에는 하염없이 물이 흘러내리고 ....
나는 따스한 물기 유리창에 이마를 댄다

달빛이 바닥의 물위에 비치고
나는 소리죽여 울고있고 .....
미미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2003 . 11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