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판타지 침대곁 알러지
by RAN



봄비가 줄창 내린다 . 빗물이 벽에 스며들면서
영혼의 통로에 낯익은 바람소리 들린다
찬비는 산자들에게 죽음을 자각하게 하고 ....
죽은 자들에게 몹쓸 동경을 불러낸다



수술부 자동문이 운명의 겉장처럼 무겁게 열리고
닥터 히레와 수련의들은 복도에 들어서면서 ... 물컹
전신을 휘감는 꽃냄새에 몸서리 친다 . 응급부
소독약 냄새에 쩔어서 살아온 남자들이 느닷없이 불안한
달콤함에 노출되며 ... 그리운 홈베이스와 재회한다

준비실에서 히레는 영안실 노파 하우에게 브리핑을 듣는다
환자가 아몽 화류여왕의 막내딸이라는 대목에서 ....
세척하던 수련의들 손에 물비누 방울이 파들파들 떨리고
돌연한 뱃속 기포에 누군가 딸꾹질을 한다
상해 강간사고라는 설명에 ... 독종 변태

부세는 미소를 참느라 몇번이나 입술에 침을 바른다
수술방 02O호 문틈으로 흩어져나와 전실 카트 바퀴에
끼인 연두빛 꽃잎들을 치울려던 아나고는
흠칫 놀란다 . 손톱보다 작은 잎새마다 따스한
물기에 젖어 ... 녹진한 냄새가 피어난다



수술방 문이 열리고 초록 시트 덮은 대머리 미녀가 보인다
둔한 금속성과 함께 ... 01O호실과의 벽이 좌우로
천천히 열리며 동시에 속유리문이 위에서 내려오고 ...
레몬빛 6개 수술램프에 불이 다 들어온다

아몽병원 수술부는 . 내사랑 미미를 컨셉으로 설계하면서
방안이 몸속 기관 열리듯 언제든지 해체되어 스미듯
합쳐지며 갈리듯 투영된다 . 수술 유니트마다
세 벽면을 자동으로 열고 닫을 수 있다

쌍둥이 세자매가 01O호에서 수혈 준비하는 모습이
전면유리를 통해 보인다 . 발가벗은 미녀들 셋이 나란히
다리를 유리면쪽으로 향해 눕자 .. 기나긴 시간 ..
여자를 본적도 없었던 남자들이 나지막히 신음한다



해당화연고 떡칠된 아로의 주름을 살수기로 씻어내며 ...
아나고는 손바닥 땀으로 호스꼭지를 잠깐 놓친다
중추신경이 최음 약발에 휘감긴 아로는 ... 마취 상태인데도
허리가 뒤틀리고 발가락이 꼬여간다

"지독한 약발이야 ... 놀라운 색마가 나타났었군 .."
히레는 마취제를 압도하는 최음제를 개발해낸 사사란
인간에게 요사스런 라이벌 의식이 치밀어온다
세척 물줄기와 아나고의 씻어내는 손놀림이 애무처럼
아로 주름에서 뜨신 연두잎이 뭉턱뭉턱 흘러나오고 ....

주름 꼭지 핑크빛 돌기에 핏발이 팽팽히 서있다
신장쪽 혈관이 상해서 . 고무튜브를 요도속에 집어넣자 ...
아로의 엉덩이가 잠깐 들썩이고 . 놀란 아나고는
달아오른 치골을 손바닥으로 꽉 누른다 . 그바람에
엄지손가락이 발기한 돌기를 어루만지는 꼴이 되버린다



환자 아랫배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머쓱한 아나고가
고개를 들자 ... 봉합사 풀고있는 도다리가 충혈된
뱀눈으로 마주본다 . 바닥에 떨어진 피오줌 노랑꽃과
연두꽃잎에서 줄기가 절로 퍼져나온다

꽃피족 혈관 수술은 아몽병원 VIP 진료의 꽃이었다
코앞에 하늘이 준 기회가 왔건만 ... 수련의들은
쏟아지는 아로 꽃잎에 알러지가 와서 부들부들 떨거나
눈물 범벅 재채기 하거나 . 흰자위 까뒤집고 풀썩 쓰러진다

피오줌통 앞에서 아나고는 유리벽 너머 세자매 아랫도리들을
훔쳐본다 . 아라 라벤더 . 아루 핑크 . 아리 루비 ...
색색의 꽃잎들이 매끈한 다리사이에 겹쳐져서
레이스 자락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수혈주머니
핏물에 은하처럼 무수한 은빛 점들이 반짝이며 떠다니고 ....



"체액이 몸밖으로 나오면 꽃이 끝없이 피어나 ... 요괴
생명력이지 . 꽃줄기 하나만 화분에 키워봐 . 금방 방을
뒤덮어 . 얘네는 죽어서도 꽃으로 남는다지 ....
꽃이파리 몽땅 소각로에 태워버리고 . 집합 "

상처가 깊었는데도 피부는 꿰매지 않고 수술을 마쳤다
꽃피족들은 한계를 넘는 피부탄성으로 ... 복원력이 워낙 빨라
몸에 결코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 . 꽃잎을 치우면서
아나고는 히레의 집합 명령에 입술을 씹는다
목소리톤이 ... 잘린 손가락 허공에 튀고 핏물 범벅 되겠군 ...

알러지 쇼크로 입에 거품 물고 쓰러졌다 벌떡 일어선 마구로
가운 아랫도리에 급분출 정액으로 뭉치 얼룩이 번져간다
"미친 냄새야 .." 흰곰 덩치 마구로가 꽃더미에 머리 박는다
유리벽 너머 수술대에 퍼질러 앉은 세 자매는
수련의들을 진귀한 노예처럼 찬찬히 구경하고 있다



아로 주름 공들여 씻긴 아나고를 아라는 유심히 바라본다
아루는 램프빛 반사를 피해 유리면에 딱 붙어서 동그랗게 두손
모으고 ... 부풀어 오른 남자들 아랫도리를 훑어본다
아리는 자신의 다리사이를 눈 벌개서 보고있는
도다리 앞에 고개 갸웃하며 ... 다리를 조금 열어보인다

털 없는 미녀들 알몸을 보며 아나고는 갯내음 환상에 젖는다
여름석양 바다처럼 타오르는 아리 . 봄밤 바다처럼
밀려드는 아루 . 겨울아침 바다처럼 빛이 부서지는 아라 ...
통에 후두둑 떨어지는 아로 오줌꽃 앞에서 ... 아나고는
흐린가을 갯벌을 떠올리며 우수가 울컥 치민다

02O방 램프가 하나씩 꺼지면서 01O방은 휘황한 유리상자
속처럼 밝아온다 . 어두워지는 전경에 미녀들은 타고난
우아함과 지고의 무심함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
기둥에서 콘크리트 벽이 밀려와 유리면을 덮는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찍고 찍히던 다른방의 정물로 남는다



동병동 9층 동물실험실 . 창문 하나 없이 황량하게 어두운 방
통풍구에서 며칠째 빗물이 스며들어와 벽을 타고 흐른다
대이동때 미처 처리하지 못한 흰쥐들이 몰려 다니고 ...
손바닥만한 파충류들이 두꺼운 이끼위에 깔려있고
절지류 발소리 . 끽끽대는 울음소리가 쉬임없이 들린다

"조용히해라 . 좀마난 것들아 . 나 여기 오래 안있을거야"
벽면에 붙인 실험대 위에 모로누워 사사는 소리친다
온몸에 뱀과 전갈과 거머리에게 뜯긴 자국으로
성한데가 없지만 ... 이빠진 칼날처럼 악을 쓴다
"나 안죽어 . 떼칼침 맞고 중환자실에서도 살아난 몸이라고 .."

통풍구 사이로 희미한 빛마저 사라지는 밤이 오면
사사는 대롱을 발기시킨다 . 어둠의늪 복도에 갇혀 살면서
영리한 사사는 스스로 발광체가 되려고 ... 무덤가에서
인가루를 모아 귀두에 이식을 해넣었다 . 혈관이
팽창하면 열받은 가루들이 빛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혀 깨물며 사정 참아가면서 발기를 유지하려는 사사의 노력은
새벽을 못기다리고 대여섯번 흘려버린 정액 깔고 잠든다
이끼 긁어먹고 빗물 마시며 그만큼이나 버티는것도
정력 본위로 살아온 호색의지 덕이었다 . 정액이 밀려오면
깡패시절 군가 힘차게 부르며 요도를 쥐어짰다

대롱에 빛이 사라지면 이내 . 벌레들은 몸을 뜯기 시작했고
사사는 전갈이 콧등을 무는 순간에도 ... 두손으로 꼭
대롱을 붙잡고 코를 골았다 . 벌레들은 인가루와
정액 비린내 나는 대롱 근처에는 다가오지도 않았지만 ...
자나깨나 성물처럼 두손으로 감싸고 지냈다

닷새가 지나고 . 탈진으로 환영이 보일때쯤 사사는
찢는듯 자극적인 소리를 듣는다 . 동물의 비명 같은 소리는
벽에 울리는 리듬을 타고 이어진다 . 사람이야 ....
발로 벽을 차자 몰탈가루 떨어지고 ... 사사는 실험대 받침쇠를
풀어 벽면을 찍어낸다 . 빗물선 따라 벽돌에 금이간다



건축물로서 아몽병원은 그리 쉽게 헐릴 벽이 없다
여성으로서 병원은 . 사사의 팽팽한 혈관 기운으로
버림받은 벽면 한 스팬이 스스로 몸을 내주듯 헐린다
비젖은 벽돌들이 처녀의 멍처럼 무너져내린다



2004 . 5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