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 소주 반병 비를 만나다


딩동 . 잠 깬다 . 찾아올 사람 없는 나는 귀를 모로 덮는다
딩딩동 ... 가스 검침 아줌마가 우비를 쓰고 들어온다
빗방울 하나 떨어져 골여울 만든다 . 아줌마는 ..
현관에 늘어선 빈 소주병따라 나간다 . 이상 없습니다
안전한 우리집 . 정박한 배처럼 반병의 소주가 찰랑인다

비가 온다면 ... 내일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며 ... 나는
남은 소주를 물잔에 채운다 . 어두운 방안이 가득 찬다
언제나 진행되지 않았던가 ... 어깨를 모으고 목을 축이고
물이 물을 모을 수 있는 이 멋들어진 아침에 손을 흔들어준다
건너편 레일에 달려오는 불빛을 보면서 ... 젖은 나는 ..

지상을 달리는 초록 전철이 된다 . 진노랑 재킷 걸치고
국철의 촌스러움에 무리없이 어울리는 나는 오늘 ... 좀은 ..
흔들리고 싶다 . 좀더 미끄러지고 홀연해지고 싶기도 하다
서정에 너무 헤픈 승강장들 잉크빛 신호등 깜빡인다
곡면 진입로와 구깃한 전신주가 어제와 다른 내 눈빛을 살핀다



전철안 . 그와 그녀는 느닷없이 핸폰을 닫고 생각에 잠긴다
천정을 타고 들어온 촉촉한 취기에 수직으로 찔린듯 ....
그녀는 전화박스 같았던 남자를 떠올린다 . 사랑했던가 남자를 ...
창가에 빗방울이 오차처럼 밀려난다 . 남자의 전신이
그녀에게 음각된다 . 고개 젖는 그녀를 앞에선 그가 쳐다본다

머리는 왜 흔들고 지랄이야 ...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
발코니 화분 같았던 여자를 떠올린다 . 그리운가 여자가 ...
손잡이가 통렬한 블루스로 흔들린다 . 손잡이에 머리 파묻는 그를 ...
옆에선 그녀가 본다 . 그녀는 노랑택시 같았던 남자를 생각하며 ..
남자의 클랙션이 갈비뼈에 휘감기며 울리는 것 같다

그동안 . 누군가의 핸폰이 울렸지만 . 받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다 그랬다 . 그들은 어딘가에서 비를 맞고 있을 것 같은
지나간 사람의 기억에 미쳐버려 ... 정차역도 목적지도 ..
잊어가고 있었다 . 전철이 마신 소주가 스며든걸 아무도 몰랐지만
휘청이며 젖어가는 흡수감에 머리를 싸안기도 했다



방안은 더 어두워지고 . 창밖으로 하얀 담장과 사철나무와 ..
두텁게 살자는 광고판이 지나간다 . 겨울비는 오래된 엘피처럼
하나씩 뼈만 남은 멜러를 쓸며간다 . 순환선 2003 11 ...
반복에 이골난 내 빈잔 ... 환승역에 진입하고 ...
중독된 바퀴들이 배반만 당하는 작부 승강장에 선다

내 속에서 흔들리던 취기들이 떠나가고 .. 환장할 ..
새 기억들이 들어온다 . 나는 전환하지 못하고
언제나 치환될 뿐 ... 아침술은 그리움처럼
오래가고 . 이제 나보다 먼저 취해버린 .....
깨어날 수 없는 우수 역에 들어간다



술없이 비에 겨운 내 방안에
형광등 어눌한 그림자들 지나간다
나는 자꾸만 돌아본다





2003 . 11 . 20



32 . 작은 엉덩이는 노래한다


낮은 목소리로 난 숨을 감추듯 노래하기 시작한다
계단을 올라가며 ... 당신은 나를 우러러보며 생각한다
벽면의 낙서 같구나 ... 논슬립에 패인 홈 같구나 ...
허공에 방울 여울 .. 나는 고요히 노래할뿐 ...

보이는 사랑은 작다지 ... 잘 사는 삶이 아니라
많이 사는 삶에 집착하는 당신에게 나는 겨울 길가에
땅콩 리어카 봉지 호롱불 ... 잠깐 뜨신 눈길을 던지다가
주머니에 짤랑이는 동전 성욕을 꼭 쥐고 돌아선다

나를 보지 마라 . 빈약한 상상력이 속깊은 의미를 만난
계단위의 비극 ... 작은 오렌지 미끄러운 껍질에 ...
발 헛디뎌 떼굴떼굴 굴러 ... 꺼내지도 않은 접시에
스프를 흘리지 마라 ... 욕망은 절망을 떠먹는 스푼일뿐 ...



리듬을 타고 포르테시모 . 난 발랄하게 노래한다
좁은 통로를 . 당신은 쉽게 지나간다 . 나를 만났기에 ....
돌아보지 마라 . 폭이 작으면 비전은 넓고 ...
퍼지지 않았기에 당연히 집중하기 좋았을 뿐

팽팽하지 않은 모든 합리성을 부정하고 ... 납작함에
편견을 가진 당신은 ... 과대함과 물컹함에 입지를 세우고
한길을 가는 남자 . 탐스러움은 모든 문장마다
당신이 찍어대는 마침표 ... 부피에 미친 당신과
좁아서 쿨한 나 . 통로를 유연히 스쳐간다



코라스를 타고 하모니를 끼고 . 난 춤 추기 시작한다
전철에서 . 작아서 밀도있게 흔들리는 나를 당신 바라본다
앉은 자리에서 무차별한 평준화 시점으로 사냥하는 ...
가난한 똥침 . 극복할 수 없는 오차 . 떠나라 ....

자리를 좁게 차지하지만 ... 결코 휴대용은 아니야
성기고 헛된 그물을 빠져나온 나는 . 작은 자유 ...
이상이 다른 두개의 레일 위에서 . 신호등이 커야
건널목이 안정된다던 확장희구의 당신 ... 떠나라 ...

전철의 모든 이음매가 레게 리듬을 깔면서 ...
작은 평화 . 겨운날의 시선들 다 떼내고
작은 기적 . 나는 거침없이 노래한다



누구나 힘들면 붙잡는 손잡이들이 백 보컬하고
당신은 작은 진실에 통한의 랩을 한다
두개씩 묶인 풍선들이 떠다니고 ....
전철에 작은 신화가 춤춘다





2003 . 12 . 27



33 . 콜라 마시러 집 나오다


햇살이 침대살 쥔 알몸 위에 엎어져 쏟아지고 ...
마개가 비스듬히 열린 갈데없는 더운 공기 떠다니는 방
그녀는 창유리에 아랫배를 식히며 창너머 낯선
남자에게 외친다 ... 당신 거기서 뭐해요 ...

봄이오면 ... 그녀는 콜라 한병 마시러 집을 나온다
190밀리 까만물병에 입술을 적시고 혀를 달래고 눈으로 ...
남자의 탄탄한 바지와 38구경을 흘기고
뽀시시 흙먼지 솜털처럼 반짝이는 쿠페에
... 생애를 걸겠다며 ... 그녀는 떠난다



겨울 눈밭 창가에서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다
낡은 봄양복 꺼내입고 잇새에 성냥 물고 ....
한쪽발을 끌며 거리에 나온다 . 유리문 밥집에서
전철 승강장에서 비닐포장 좌판에서 ... 누군가 붙잡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 봄이오면 그녀는 ...

타이어 맞추며 사격을 배우고 .. 비포장길 운전도 배우고
트위드 캡 . 피크닉 머플러 . 니트 스커트 ...
자동소총에 매칭한 패션 ... 누가 그 총에 죽더라도
억울하지 않을 스타일로 어깨에 힘주며 ...
... 들고 튈 돈은 많아라 .... 노래한다

남자가 원하는대로 머리결을 바꾸고 행복해하고
침대만 데우고 몸은 식히는 불우한 남자 ....
사랑에는 둔하고 육감만 예민한 남자 곁에
모로누워 ... 편지를 읽듯이 사랑을 전하는 .....



열여섯살에 시멘트공장 남자와 첫사랑을 하고
팬티속에만 환장하는 트럭드라이브들에 신물 나던
핑키 유니폼 웨이트리스 .... 봄날의 들판에서
사랑하면 죽을 수도 있으리라 . 예감처럼 새가 날고

온몸에 총알이 박히기 0.5초전 ... 푸른하늘을 보며
그녀는 콜라 마시러 나온 어느 오후를 생각한다
... 봄이 오면 ... 먹다만 사과처럼 작은 기억이
하얀 원피스 피꽃 죽음 곁에 남는다



발밑에서 눈이 애틋한 자위의 정액처럼 녹는다
상실 중독의 내 골통에 ... 표현할 수 없는 부재감이
녹아서 진창이 된다 . 그녀의 생각만으로
봄은 이미 창턱에 발톱을 긁고있다

봄이 오면 .... 콜라 한병 마시러
집을 나오고 싶다 . 그녀처럼
사소하게 미쳐버리고 싶다






2004 . 1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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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해로움 없이 나누는 날까지 지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