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맥주 파라솔 젖은 아랫도리




늦은밤 . 후미진 길가 허름한 맥주집 파라솔
가득 채워진 오백시시 잔앞에 나 앉아있다 . 시무룩하다
셔츠바람 남자가 길가에 세워둔 하얀차
경보를 풀고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탄다

까만 초코 웨퍼스 차림 여인이 파라솔 옆을 지나가며 ...
맥주잔에 퉁퉁 불은 내얼굴 빤히 본다
그녀의 뒷모습이 셔츠 남자의 하얀차 속으로 사라진다
쌉쌀한 맥주맛 . 내 시선 하얀차에 고정된다



하얀차가 가볍게 진동하자 잔속의 맥주가 출렁인다
차 진동이 리듬타고 거세지면서 맥주잔이 저홀로 끄덕인다
차 뒷창에 닿은 하얀 발바닥 보며 . 나 발가락 배배 꼰다
차창에 뿌연김이 가득차고 . 나 늦된 거북이처럼 목 주욱 빼낸다

발바닥이 차창을 꽝꽝 차고 . 나 안주겸 손가락 쪽쪽 빤다
차체가 기우뚱 기울고 . 맥주잔 기울면서 거품 흐른다
나 얼른 맥주잔 입가로 가져가고 . 차체 울컥울컥 떨린다
내 턱가에서 녹슨 펌프처럼 맥주가 벌컥벌컥 쏟아져 흐른다

나 차가운 파라솔대에 뜨신 마빡을 벅벅 부빈다
차체가 대양의 고래등처럼 펄떡이면서
차창으로 하얀 샌들 한짝 튀어나와 밤하늘에 날아간다
잔속 맥주 왈칵 쏟아져 내 아랫도리 펑 적신다



하얀차에서 까만 슈트 여자가 휘청이며 나온다
파라솔을 지나가며 그녀 포만하게 내려까는 시선으로
질퍽 젖어있는 파라솔과 나를 바라본다
나 벌떡 일어나 꼿꼿이 선채 부르르 떤다

빈 맥주잔에서 뚝뚝 떨어지는 방울들 ...
내 아랫도리 싸늘하게 식어간다
하얀차 떠나는 바퀴소리 매끄럽다






2002.10.03
2005.04.07  Rev.



6 . 김추자 블루스 밴드


종3에서 놀던 여인들을 위해 고별 콘서트를 했다던가
선데이서울배 록 페스티발 오프닝 밴드였다던가
동남아 순회공연중 웨스터 말레이 섬 하나를 빌렸다던가
구전되는 그들의 전설을 궂이 캐볼 필요는 없으리라 . 물론
한반도 최초의 트리뷰트 밴드라는 잡소리까지도 ....



월남 상사가 되려고 하사관 학교에서 박박 기고 있을 때
종전 소식 듣고 탈영하려 혀깨물었던 리더 기타와 ...
대학 대자보판 . 칠판 . 담벼락 ... 말끔한 판때기마다
허구헌날 '거짖말이야'라고 적으며 돌아댕기다가
깜장 양복들에게 끌려갔다 맛간 베이스와 ....

사랑이 무르익으면 님을 먼곳에 보내야한다며 부르짓다
쪽박차고 먼곳의 님이 되고만 오르간과 ...
라면공장 창고지기 하면서 빈박스 쇠막대로 두드리며
"날두고 정말 그럴수가 있나요" 외치던 드럼으로 ...
애끓는 역사를 지닌 후덥지근한 밴드이다



그들에겐 나름대로 묵시의 소통 끈끈이가 있어
어떤 말에나 "뉨은 뭔곳에" "눠무 외로워"
"말쒕 뫊은 김솽솨" ... 따위로 복모음화한다
"위름도 몰라 쉉도 몰라 "

흔치않은 뉘앙스 형용사가 있어 '추자하다' 라고하면
쫀득쫀득 결코 느끼하지 않는 느낌이며 ....
'추자스럽다' ... 하면 깊숙히 촉촉한 동력에 바르르 떨리는
느낌이며 ... '추자하자' 라고하면 어떤 진부함도
까부시고 선단에 서보자는 다짐 말이 된다 . 그리고
'추자' 라는 짧은 외침은 '돌아오겠다'는 인사다



개밥그릇 알앤비 차버리고 정통 소울을 고집하는 그들은
언제라도 리듬에 말려들면 손목 머리위로 띡 올리고 ...
혼이라도 부를 듯 흔들어대며 이제는 말라버려
바람도 일지않는 힢을 맹렬히 비튼다



그들이란 ... 저인망 발동선 춤꾼 시대에도 지난날
큰바다 빛은 사라질수 없다고 믿는 외로운 등대지기들
한반도에 단 한순간이라도 그리운 디바의 노래 결코
그치지 않으리라 . 가슴 꽝꽝치며 밤잠 설치며 ...

짐트럭 이따금 지나가는 외딴 길가 주막집 아홉평 홀에서
오색등불 아래 밤새 단 한곡의 노래로 ...
춤추는 순정의 댄서와 술취한 나그네 앞에서
늘어진 청승 블루스를 연주한다

2002.10.07
2005.04.07  Rev.



8 . 바닷가 짜장면집


항구도시에 방울처럼 매달린 섬 포구에 짜장면집이 있었다
드르륵 여는 문에 삐걱이는 나무의자
만두도 볶음밥도 짬뽕도 없이 혁명시대 구호처럼
단 하나의 메뉴 ... 짜장면 60 ! ...

국가공인 200원짜리 한그릇에 60원이란 사실에 더하여
아예 곱배기라는 부가품목이 존재할 수 없는 양으로
찌그러진 양푼에 쇠젓가락 함께하던 그 집은
짜장으로 독립된 작은 천국이었다



멀리 부두에서까지 몰려오는 사람들로 발딛을 틈
없었던 가게는 겨울이 두번 지나는 동안
당연하게 누적된 적자에 문을 닫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짧은 추억으로 잊혀져갈 즈음 ....

포구에서 한참 올라간 산등성이에 같은집이 문을 열었다
짜장면 60 ! 단골들은 산길쯤은 행복하게 올라다녔다

문짝도 따로 없이 불거죽죽 포장안에서
북적북적 아무데서나 쪼그려 앉아 먹던 고객들이 가끔
종업원도 없이 종일 반죽 해대는 주인을 붙잡고
"왜 망하는 장사를 해 ?" 물어보면 ... 그는
"사람들이 많은게 좋아서" 라며 쑥스럽게 웃곤했다



오래가지 않아 ... 계산 안나오는 판자짜장집도 문을 닫았다
노상 허연 앞치마 바람으로 살던 주인이 삼륜트럭에
간판과 그릇들을 싣고 떠나던 날 . 포구 아래까지
줄지어 선 단골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바닷가에 세월 흐르고 새건물에 찜질방 노래방 오락방 ...
들어섰지만 그때만큼 붐비는 집은 아무데도 없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쓸쓸한 날이면 때로

빈 드럼통 모닥불가에서 늙은 일꾼들은 지난날
푸짐했던 양푼 짜장면 김이 손에 잡힐 듯 떠올리며
계산 없던 어느 생을 허전한 곁불처럼 이야기한다

트럭짐 고무줄에 묶인 낡은 간판 짜장 60! 과
도시에서 밀려난 허연 앞치마 수줍던 루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짜장면 천사를 ....

2002.10.16
2005.04.07  R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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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해로움 없이 나누는 날까지 지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