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11월의 길바닥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그 남자는 어둑해진 저녁쯤 그 자리에 나타났다 .
여대로 올라가는 거리 액세서리 노점이 있는 길바닥
좁은 계단 카페옆 화단밑에 언제나 기대어 있었다
아니 . 언제나가 아니라 비나 바람처럼 딱히 그려지는 일기보다는
가게의 불빛들이 안개를 마셔버린 것 처럼
공기중에 풀어내지 못한 것들이 떠도는 밤이면
어김없이 심어놓은듯 그곳에 있었다

붕어빵이나 버터링 쿠키에 소주 . 잿빛 코트에 뒤축 없는 스니커즈
발그레 취해서는 낮은 소리를 중얼대는 것이 마치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을 부르는 것 같아 계절이 즐겁기만한 학생들은
“ 얘 너 불러 “ 라며 푸드드 웃었고
카페 스피커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처럼도 보였고
없어도 그만일 투명인간처럼 발에 채이기도 했다

운수 나쁜 어느밤엔 소주도 쿠키도 없이 코트깃에 머리를 파묻고 있어서
다이어트에 실패한 은희가 우유팩 하나를 두고 갔었고
전날 중절수술 한 선영이가 정액권 하나를 흘려두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 춥기만하던 어느밤 세습 알콜중독 지숙이가
빨간 눈으로 훌쩍이며 그랬다 “아저씨 이러다가 죽어 ... “



11월의 어느 포근한 저녁 . 완두콩 만큼이나 키작은 연수가 오랜
머뭇거림 끝에 반으로 접힌 에이포 한장을 그에게 건네고 달아났다
그날 밤 첫눈이 내렸다 . 바닥에 닿자 녹아버린 눈으로 축축해진
길바닥의 아침 . 공무수행 승합차가 물체로 남은 그를 싣고가는
모습을 이른새 처럼 바지런한 몇 학생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이 오고 좁은계단 카페 화단길 . 존재가 시간만큼이나 옴팡지게
잊혀진 그 곳에서 . 바닥 모를 몇 개의 전환과 상심을 자각하지는 못했겠지만
아이들은 느닷없이 술을 마시고 싶다던가
누구가 그립다던가
공부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열기에 떨면서 지나갔다

연말 분위기로 흥청이는 여대앞 노점상 길에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다
첫눈 오던 밤 화단 앞에서 죽은 노숙자는 신분을 밝힐 쪼가리는 커녕
그렇게 죽을라고 작정한 자처럼 빈 몸이었는데
곱게 접은 종이 한장을 꼭 쥐고 있었다
그걸 펴보니 . 연필로 꼼꼼하게 그린 그 남자의 모습으로
그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ps.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 이야기
프리보드 205 . 206 . I put a spell on you 1 . 2

2002.11.27


19 . 고양이가 있는 식탁


왜 이래 또 ... 가만 ... 잠깐마안 ... 나중에 ... 해 ... 차아암 “
반쯤 깎인 오이가 불끈 모로 눕고 . 발라당 냄비뚜껑이 공회전한다
토마토 페이스트가 보골보골 . 마카로니가 헬렐레 몸을 풀어낸다
졸고있던 고양이 게슴츠레 눈으로 . 하품하고 부르르 한차례 떤다

“놔바 ... 푸러야지 ... 트더져 ... 끄윽 ... 어떠케 ... 이이이”
비전냄비속 송이버섯이 에그머니 눈가리고 . 조개가 눈을 껌벅인다
드레싱병이 잘룩한 허리를 흔들고 . 간장종지가 힢을 바닥에 부빈다
전모를 파악한 고양이 . 침을 묻혀가며 얼굴을 차분히 닦아낸다

“바바봐 ... 아냐 .. 빼봐 ... 여어기이 .. 이케 하 ... 흐흐흐”
고추피클병 뚜껑이 펑 열리고 . 파셀리가 몰라몰라 온몸을 비튼다
알미늄호일이 찡끗하며 첩첩이 휘감긴 키친타올 옆구리를 꾹 찌른다
나설때야 ... 고양이 기지개를 좍 피고 등을 낙타처럼 곧추세운다

“가만 ... 더어어 ... 왜에에 ... 몬차마 ... 으윽 .. 피이이”
팩우유가 퍽 쏟아지고 . 마요네즈가 튜브구멍에 울컥 고개 내민다
파마산치즈의 허탈한 안개 . 렌지에 삑삑 삼분 데우기 끝신호 난다
잽싸게 우유 핥는 고양이 . 퍽- 짜증난 휴지뭉치에 머리를 맞는다

“야아옹- “




20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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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해로움 없이 나누는 날까지 지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