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승강장에 남은 이름

환승을 기다리면서 ... 건너편 승강장의 그녀를 보고
단부가 사라진 레일 같은 기억속에서
5년전 또는 15년전의 이름 하나 떠올린다
청량리행 또는 오이도행이라는 결구를 갖추지도 못하고 ...
블루 ... 딥블루 라인 따위의 이미지도 소거된 ....

정 . 희 . 미 . 경 . 은 . 혜 . 영 . 수 ....
티베트 사원의 돌계단에도 새겨져 있었다는 ...
영국령 작은섬 코코넛 해변 ... 산득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
혐오로 가득찬 주정의 키워드로 꺽꺽대던 ...
해프닝처럼 서곡처럼 종소리 울리던 ... 그 이름

당고개행 전철이 전역을 통과했습니다
스포츠서울 톱 기사를 보며 나는 언제나 초조했었다 고백한다
술잔을 부딪치기 위해 ... 신열난 침을 삼키기 위해
외등에 날아온 구차한 나방처럼 이름을 묻고
익숙한만큼 잎이 지고 ...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은 물결치던 모든것들에 소금끼를 남기고 떠나고
이미지는 모서리가 여린 이름들을 쓸어간다
자판기 실론티를 보며 단종된 음료를 떠올려보고 ...
구겨진 종이컵 .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면 죽은 여자인가 묻는다
언제나 희미했었다 고백하는 나는 ...

미래를 위해 노란 안전선 안으로 한발짝 물러서고 ...
네개의 레일 건너편에 있는 5년또는 15년전의 그녀에게
이름을 붙인다 . 2003 . 8월 . 4번승강장 ....
당고개행 전철 문이 열린다 . 이별은 내 생애의 메인 메뉴였다
차창에서 멀어지면서 그녀는 나를 바라본다



다시 5년 또는 15년이 흐르고 나는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플라스틱 의자와 여름 파스텔 코튼 ....
2003 . 8월 . 4번승강장 ... 세개의 이름중에 하나쯤 ...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에 소멸할 무엇도 없이
오래 기다려온 완결의 이별을 하고 .....
전철이 지하로 들어간다





2003 . 8 . 22



29 . 해변에서 마지막 담배

칼국수 한 그릇에 너무 오래된 시간 . 소주 두병
아줌마가 말 없이 국물을 두번째 리필해 주고간다
셔츠 포켓에 딱 한가치 남은 담배를 ... 그는 해변용으로 아껴둔다
그릇을 놓을 때 아줌마 출렁이는 가슴에 ...

지갑 두께만큼이나 얄팍한 성욕이 뽀드드 소리를 낸다
남은 한잔을 비우고 까망 비닐 봉다리를 들고 ....
측면이 다 뭉개진 남쪽 남자 그가 일어난다
칼국수집 . 7번 국도 . 해변은 그의 지나간 십년처럼
부질없이 긴 끄나풀로 닿아있다

오늘 같은 날은 파도가 높더라 . 비닐잔에 소주를 채우고
봉다리에 든 마른멸치를 씹는다 . 마른 멸치와 ...
요절한 로커의 테잎 그리고 담배 한가치
담뱃불 붙이기도 힘들어 ... 미친 놈의 바람 ...
머리결 휘날리며 그를 세여자가 스쳐간다

바다 속으로 세여자 들어간다 . 20년전의 가을 바지
깊은 복도 카디건 . 회벽에 기댄 소매
그녀들 허리가 파도에 부서지고 그는 죽어간다
불붙이지 못한 담배가 피들피들 날아간다
물에 완전히 잠기기전에 세여자 한번씩 그를 돌아본다

빈 비닐잔이 날아가고 그의 어깨가 훌쩍인다
비루하게 남아있던 것들은 바다에서 다 날아간다
요절한 로커의 테잎을 모래에 묻고 ....
모두 버린 해변에 까만 비닐 봉다리 따라
그는 걸어간다 . 신호등이 소주잔 건네듯 바뀐다



양양경찰서 조형사 . 아스팔트에 교통사고 죽음을 그린다
빈 비닐봉다리를 끼고 죽은 남자의 윤곽위에서
담배를 문다 . 68번째 사고처리 . 담담한 손길로
죽음의 그림 위에 담배 한가치 놓는다

해변 길바닥에 하얀 레이아웃으로 남은 남자
칼국수집 아줌마 파도치는 가슴을 찾아오는 것 같고
바다로 떠난 세여자를 따라가는 것 같은 .....
그는 담배를 피고 있다





2003 . 9 . 20



30 . 파란 의자 마리아


잠을 깨면 . 나는요 . 맨날 똑 같은 생각을 해요
견뎌내자 ... 휘청 .. 욕실턱 넘기전에 빈 생수병을 밟고
이천이백밀리 간유리창 열면 꼴에 거실이라고 햇살이 들어와요 ...
빈소주병 열넷 . 빈생수병 스무넷 . 열망 시대의 나이 같은
공백속으로 아침이 눈물 겹게 채워져 있답니다

간밤에 남겨둔 바닥 찰랑 뜨시게 김빠진 소주 한모금 ...
눈깔까지 비천한 취기가 꾸욱 달아오르면
밤을 껴안았던 지나간 사랑의 여인들 돌아봐요
앰프덮개 레베카 ... 더불어 헤진 대님 스커트
다시 시작 해야지 . 반복과 중독은 우리 아침 키워드

금새 마이너로 치환되는 내사랑 . 크리릭 . 병목을 따고
꼴림의 침전물 같은 델몬트 망고주스랑 두잔의 술 ...
접시처럼 온화하던 나사리 바다물이 밀려옵니다
적절하게 해장술 파도처럼 흔들리는 열한시
캔바스 의자와 줄무늬 팬티 . 구조적으로 상간하지요



돌아봅니다 . 난 레코디드 멜로디 . 혀를 꼬듯 춤춥니다
부뉴엘 포스터 앞에서 회심처럼 다리 벌리는 ...
책상보 리티샤 ... 김치국물 플로럴 스커트
어리숙함이 정숙함에 얼마나 짐이 되었었는지
머리를 파묻습니다 . 나를 만나 얼룩진 그녀에게 ....

울먹이다 지 풀에 터져버린 홍시랑 골끼게 맑은 술 한모금
동백섬까지 가는 해안선 . 술잔에 파도가 넘어와요
햇살이 넘어갔어요 . 풀무원 짜장면의 오후
어두워진 술병에 늘 고요한 전화기가 기댑니다
얘들이 나를 만난것도 덧없는 연이겠죠 . 숙연하네요

파란의자 마리아 ... 헐렁해진 플리츠 스커트
나는 모로 누워요 . 허리에 손을 감고 . 뺨을 비빕니다
빈병 구르는 마리아 . 사랑이 흔들리면 안되겠지 ...
깊이 취하면 잔상에 일렁이는 세줄의 파란 등받이
남애 바다 마리아 . 물보라 피는 방안에 수평선 마리아 ...



외로울 틈 없어요 . 치마폭 깔고 기다리는 세여인
우리의 내밀함은 우리에게 허락된 아픔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지나간 파도 . 술잔 앞에서 바라보며 ...
그녀들이 감싸주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 때로는
치마폭에 흘린 눈물까지 ..... 내 술은 그렇게 깊어갑니다

마지막 잔을 비우고 자야겠습니다 . 방안이 바다입니다
잠 들면서 . 나는요 . 맨날 똑 같은 생각을 해요
사랑한다 . 소망 비전 약속 없는 내 여인들 ...
오늘밤도 별이 높고 바람 쓸쓸하겠죠
사랑해요 . 깃들임 없이 ......





2003 . 10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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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해로움 없이 나누는 날까지 지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