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 아파트

소름

윤종찬 영화


미아를 찾는 겨울 아파트에 남자가
들어온다 .
캐비넷 같은 헌 냉장고와 ....
검게 그을린 벽지가 방안에 남아있다 언젠가 미쳐서 불타 버렸던 흔적들에
.......... 남자는 하나씩 자신의 냄새를 내려 놓는다 .




한때는 꿈이었고 .... 그리고 사랑이었다가 ... 세찬 불길로 타버린후
그만큼의 낙서와 상채기와 배설물들로 남은 아파트 .
밤과 낮 사이에 서있는 복도에 짧은 해가 저물어가면 ...
날이 선 신음 소리가 바람을 타고 지나간다 .




아파트에는 긴 이야기와 벽을 사이에 둔 여자가 있다 .
피아노 연습곡이 아침 미역국 냄새와 함께 떠다니고 ...
마이너스 삼도 쯤의 로테이트 경사가 있는 경대 앞에서 그녀는
어제밤 남편에게 얻어 맞은 자욱을 문지르며 ... 한웅큼 침을 삼킨다 .

언제부터인가 아파트는 여자가 되었다 .
미닫이가 구를때마다 한 장 씩 덮어둔 지나간 사랑이 팔랑이고 ...
여닫이가 삐걱일때마다 .... 경첩에 끼워둔 깊은 감각 하나 물기를 머금는다 . 오래전 떼내버린 초인종 소리 울리고 .... 현관문에 붙여둔 속옷의 상표가
기우뚱 ..... 자물쇠가 열리면 ... 신발장 안의 발가락이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낮이면 ... 그들은 아이가 된다 .
금이간 수정란에서 기어나와 착상이 덜된 자궁 벽을 더듬어가며
..... 발코니에 서면 .... 눈 앞에는
웅크리고 ... 가임의 그날을 기다리는 또 다른 아파트 하나가 보인다 .
미망의 젓꼭지처럼 ........ 남자는 밀크 쵸코바를 여자는 담배를 물고 다닌다 .


밤이면 . 그들은 남자가 된다 .
못견딜 음기에 노상 술을 퍼마시고 .... 뽀드락지 양기로 주먹을 휘두른다 .
이미 바래진 정액을 원고지에 남기고 ....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완고한
성기에 불을 지른다 . 어찌할 수 없었던 체외 사정은 장대비가 되어
외로운 아파트 가슴팍을 적신다 .

불임의 나날들에 아파트는 자식을 품에 안는다 .
그를 낳았던 분만의 자세로 남자가 된 아들을 받아들이는 이 밤 .
천둥 치는 환희가 썩은 목재문을 타고 ... 금 간 슬라브를 타고 ... 구멍난
벽돌을 타고 ... 가가호호 전해진다 . 질투와 배신의 열아홉구멍 연탄재와 함께 복도 끝에 숨어드는 새벽 역광으로 모성에 삽입했던 남자 휘청이며 걸어간다

초록색 편의점에 빨간색 토마토 쥬스병이 깨지고 ... 두장의 화투장처럼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 이발소 액자 안에 있는 누런 빛 사진 한장과
연노란 토종닭 다리 .... 끗발은 맞아가고 .... 얄팍한 침대의 러브 호텔 .
아파트를 떠난 여자는 더이상 모성도 그리움도 아니었다 .
근친을 떠난 성교는 치정으로 내닫고 ....

사정을 끝낸 남자는 여자의 목을 비틀어 버린다 .
낮에 삼켰던 닭 한 마리처럼 .... 밤에 죽어간 여자 ..... 입 술 안에 남편에게
맞은 상처가 다 아물기전에 ... 아들에서 샛서방으로 바뀐 남자의 등에
업혀 ... 자신이 남편을 죽이고 파 놓은 구덩이 옆에 나란히 묻힌다 .
불의의 효자로서 남자는 미터기를 꺽지 않은 택시를 몰고 돌아온다

남자는 미아가 되어 아파트를 떠나간다 .
입주할때 청춘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 만신창이가 되어 더플백을 매는 남자 . 일기 같았던 원고지들은 다 불탔지만 ... 사랑했던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계단 벽을 따라서 다리를 절며 내려온다 .
또 한번의 상실에 현관 등은 가슴이 튈때마다 떨리는 눈을 깜빡인다 .

외로운 아파트가 뒤척인다
여자와 남자가 다 떠나버린 아파트에 비가 내린다 .
남자 - 암전 - 아들 - 암전 - 사랑 - 암전 - 상실
떨리는 모습으로 보내야 하는 현관 처마 위로 .....
긴 세월 참았던 비가 쏟아져 내린다 .












2001 . 9. 25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