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바닥 그녀의 위에

구멍
차이밍량 영화



구멍위에서 .

어느날 배관공이 다녀가고 나서 방 바닥에 구멍이 하나 생겼다 .
그 작은 구멍으로 아래층이 들여다 보였다 . 목을 타게하는 호기심에 눈을 바싹 들이대자 매서운 살충제가스가 확 눈에 들어왔다 .

도시에는 끊이지 않고 세찬 빗줄기가 퍼붓고 있었다 . 2000년이 일주일 남은 날 . 뉴스에서는 거리를 뒤덮고 있는 전염병 경보를 반복했다 . 빛을 무서워하는 치명적인 병으로 도시는 비어져갔다

시장은 텅비어있다 . 가게 문을 열고 외로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캔맥주를 마셨다 . 한 노인이 이제 더이상 만들지 않는 양념을 사러 다녔을 뿐 . 하루종일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꿈을 꾼것 같다 . 아름다운 여인이 엘리베이트 앞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 나를 보는 시선이 뜨거웠다 . 여인은 계단 참에서 ... 옥상 입구와 복도에서 계속 노래했다 . 한번은 무언가 나랑 주고 받으며 함께 노래하고 있었다 .
맥주에 취해 소화기를 안고 잠이 들었다

바닥의 구멍은 조금씩 커져가고 나도 즐거워졌다 . 어느밤 구멍이 막혀있어 주전자의 물을 조금씩 부어내렸더니 다시 벌어졌다 . 내 힘으로 구멍을 가꾸어보기로 했다 . 구멍가를 깨끗이 닦아놓고 얼굴을 대보고 구멍 속에 발을 넣어봤다 음악처럼 쾌적함이 전해져왔다 .

시장 동료가 전염병으로 실려갔다 . 자꾸만 도시는 어두워져 갔고 어느날 돌아와보니 구멍이 막혀있었다 . 망치로 두드리다 통곡을 했다 .
절망의 어두움이 계속되었고 어느날 다시 열린 구멍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었다 . 지난 밤의 눈물을 담은 물 한컵과 함께 ...


구멍 아래에서

달걀 팩을 하는데 천정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위를 보는 순간 모래가루가 쏟아졌다 .
천정의 구멍이 무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 막대걸레로 구멍을 막아봤다 . 걸레 자루가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 구멍에 다가온 시선을 향해 독한 살충제를 마구 뿌렸다

깊은 밤 자다 일어나 구멍을 테잎으로 단단히 막아버렸지만 ...
이튿날 다시 조금 벌어져있었다 .

   
방 전체에 물이 새면서 벽은 도배지가 다 떨어져 나오고 ......... 욕실에는 위층의 오물이 한방울씩 떨어졌다 . 화장지들만 사들여서 거실에 산처럼 쌓아놓았다

나는 꿈을 꾼다 . 깃털 옷을 입고 무지개 조명이 비치는 엘리베이트 안에서 칼립소를 불렀다 . 춤을 추며 계단을 타고 복도를 지나 멋진 남자를 만나고 그와 함께 빨갛고 통통한 소화기를 주고 받으며 노래했다

배관공에게 전화를 했다 . 그를 부르지만 이 빗속에 따뜻한 코코아 한잔과 함께 나한테 와줄 사람은 없다는걸 안다 . 내 욕망은 화장지 더미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뜨거운 몸을 받치고 있던 비닐 포장 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 꿈속의 가수인 나는 백싱어들과 유혹의 춤을 추었다 .

천정의 구멍이 조금씩 더 커져가더니 하얀 발이 들어와 휘젓고 있었다 . 더운 몸을 식히려 욕조에 들어갔다가 재채기가 메아리지면서 노래가 되었다 . 그때부터 세상이 어두워지고 나는 빛을 피해 휴지더미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 기침이 비처럼 쏟아져 나왔다 .

오랫동안 어두움이 있은후 천장에서 한줄기 빛이 피어나오기 시작했다 . 그리고 햇살이 담긴 물이 한잔 내려왔다 . 물을 마시고 그 따스한 손을 잡자 내몸은 충분히 넓어진 구멍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 빛의 입자들이 몸을 감싸고 있었고 ...

남자는 하얀 연미복을 나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우린 춤을 추고 있었다 .
아마 오랫동안 그랬던것 처럼 그와 스텝이 맞았다 .
그가 누구인지는 상관 없었다 .



2001 . 3. 22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