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내사랑
알랑 레네 영화


상영시간 91분 . 그동안 거리에는 내가 배제된 밤이 오고 .. 나를 깨끗이 잊어버린 등이 하나 둘 밝혀지겠지 . 나는 어두운 계단을 몇개의 빛을 따라 내려갔다 . 남은 빛들이 소멸되고 스크린에 흑백 입자의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팔과 다리는 은빛 비를 맞으려고 애타게 꿈틀대고 있다 . 스위치 보드가 팔랑 - 넘어가면서 ..... ' 나' 와 '그'가 바뀌었다 .  나는 그녀의 몸에 처음부터 새겨져 있었던듯 깊이깊이 들어가 있다 . 우리의 몸은 실비의 진창 속에서 녹아갔고 ... 비는 내일을 없애려고 작정을 한것 같았다 .

나는 건축가 . 재빨리 잊어가는 직업이다 . 나는 도시를 닮아갔다 . 호텔과 기념관에는 모서리를 다잡은 네모의 공허와 망각이 울리고 있었다 . 그녀는 배우 .... 필름이 돌아가는 바퀴살을 따라 지나간 시간이 돌아왔다 . 릴이 멈추지 않는한 그녀는 영원히 과거에 살고 있다 .

딸깍 . 오래된 테이블에 두꺼운 레코드가 올라가고 엔카가 흘러나왔다 .
1950년대를 따라 맥주의 거품이 꺼져가는 카페 카사블랑카의 창으로 히로시마의 밤은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 엔카풍의 밤을 건너 .....

느베르의 현관에서 1940년대의 달이 구름 안으로 숨어들었다 . 그녀는 10년 후의 노래를 들으며 10년후의 강바람을 맞으며 ... 자전거를 타고 떠나갔다 .
앞바퀴 위의 작은 램프가 강을 건너가면서 한번 울먹였다 . 램프의 빛은 과거를 밀어내며 그녀를 앞서서 달려가고 있었다 .

카페는 어두워지고 ... 잿더미의 탁류가 정화되어 흐르듯이 왈츠가 이어졌다 . 세개의 음표는 이국 여인의 부풀린 치마와 .... 남자의 포마드를 넘어 하이볼 잔 위에서 굴곡 짓고 있었다 . 밤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한끝으로 가고 ......

숲에서 그녀는 병사를 찾아가고 있었다 . 옛성의 돌벽을 따라 ... 버려진 집으로 들어갔다 . 숨 쉬는 것처럼 사랑했기에 호홉은 가빠져만 갔다 . 한낮 해방의 총알이 남자에게 왔고 ... 그의 체온과 함께 강가의 자갈이 식어갔다 . 왈츠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 새벽 강가에서 다리위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






인파에 밀리면서 우리는 새로이 사랑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 호텔 . 그림자의 계단이 기울고 ... 이름을 새긴 문 안으로 현재를 부정하는 거울 하나가 깨진다 . 윤회되는 네모의 침대에서 짧은 탄식이 시트에 주름을 만들었다 .
애도할 과거는 지워버리고 .... 미래에 망각할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지하실 . 낮이 돌아오지 않는 공간에서 태양이 없던 사랑을 그리워했다 . 아무도 모르는 시간이 흘러갔고 창살 안으로 구슬 하나가 굴러 들어왔다 . 그녀는 잉크 병에 가득찬 햇살과 함께 젊은날이 이미 지나간걸 알았다 .

역 . 대합실 . 낯선 의자 . 우리는 강가에서 밀려온 자갈이었다 . 새벽을 기다리는 노파의 눈에서 .. 하나 남은 담배에서 .. 서로 알수 없는 이국의 단어들에서 .. 마지막 기차를 보내버린 역에는 잠들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시간의 간격을 붙잡고 있다 . 밤의 강물이 자갈을 적셔갔다 .

히로시마 . 미망의 거리에 남겨둔 불빛이 깜빡인다 . 비가 쏟아진다 . 잊혀지지 않는 빛들이 버리고 떠나온 강물위에 떠다닌다 . 비는 흘러가고 . 이제 '나'는 '그'로 남아야 한다 . 비에 젖는 히로시마 . 밤의 끝으로 긴 간격을 두고 여자와 남자가 지나간다 .

남자의 이름은 잿더미의 자갈 위로 흐르는 강 .
여자의 이름은 모래톱이 많아서 배가 들어올 수 없는 강 .
네모진 스크린의 자막이 지워지고 ... 불이 켜졌다 . 계단을 올라간다 .


전철 승강장에 바람이 불어왔다 . 전광판에 시각이 찍혔다 . 11 : 10 .
모던 시대의 할머니와 숙녀가 나란히 옆자리에 앉았다 . 우리는 똑같이 건너편 빈 승강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스피커에서 1950년 여가수의 노래가 들려왔다 . 바닥으로 구슬이 하나 굴러왔고 ... 전광판의 글자가 부옇게 흐려졌다 .
승강장에 은빛 비가 내렸다 .

암흑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



2001 . 9. 5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