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안에 고인 햇살

천국의 아이들

마지드 마지디 영화


분홍 꽃구두

압살라 말레꼼 ....
그날 야채가게 감자더미 옆에서 쿨쩍이며 울었지만 알리는 날 찾지 못하더군 가혹한 운명이지 .. 그렇게 자라와 난 헤어지고 말았어 . 내 깊은 한숨에 몇알의 양파가 굴러다녔고 .... 모든게 이걸로 끝이라고 느꼈지 나같이 늙고 초라한 신발을 선택해줄 사람은 없을거니까 .

자라와 함께 다닌 길 위의 풍경들이 하나씩 떠오르더군 ... 문 밖을 나오면 골목길에 얕은 도랑이 흐르고 자라가 좋아하는 약장수가 있는 길목 공터 ... 도랑은 점점 깊어지면서 차가 다니는 길 아래를 지나가지 . 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라와 나를 신비스럽게 해주었어 .

나는 이제 분홍색이라기에는 부끄럽게 낡아버린 헌 구두지만 태어날때부터 천사들과 함께할 운명이었나봐 . 강냉이 봉지랑 바뀌는 팔자로 돌아다니던 나는 결국 다시 살아났어 . 앞을 못보는 아빠와 미소가 이쁜 엄마를 둔 새천사와 함께 난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학교로 다시 가게 된거야 ...

정말로 놀란건 자라가 아직도 날 찾아다니고 있었다는 거야 . 천사들 사이에서 가슴 졸이는 핑크 할미의 방황하는 마음 ... 기막히지 .. 어느날 햇빛이 금가루 처럼 내려 앉는 낮 학교 담벼락에서 결국 자라는 날 알아보고 말았어 . 목이 미어지더군 .. 누구나 두장소에 머물수는 없는거니까

내겐 이쁜 버클 장식도 든든한 굽도 나비 같은 끈도 없어 . 난 보석도 꽃도 아니고 바퀴달린 스케이트나 자전거도 아니야 . 누구나 버릴 것 같은 날 따라오는 자라를 보면서 울고 말았어 . 자라와 함께 온 낡은 운동화 ... 그 오래된 친구가 보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엉엉 울었을꺼야 ... 별들에게 들릴 정도로 말이야

천사는 천사끼리 알아보나봐 . 두 아이가 친해지고 난 다시 오랜 친구 구멍난 운동화와 나란히 길을 지나갔지 .. 더 행복할 순 없을거야 .. 가난 때문에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었어 . 벗어둔 작은 신발안에 고인 햇살같은 가난말이야 ..


낡은 운동화

말레꼼 샬람 ....
난 언제나 길에 나오면 새로운 곳을 밟아보고 싶어 . 그런데 내 이런 바람은 곧잘 날 앞질러 달려가버리더군 . 닳고 냄새나고 구멍까지 뚫린 내 몰골에 질색하던 자라가 날 끌고 다니기 시작한거야 . 가슴이 마구 뛰었지


자라의 작은 발이 들어오면 난 배가 된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 ... 근데 문제는 진짜로 배가 될 뻔했다는거야 ... 자라의 발에서 내가 추락해버렸고 ... 한 순간 도랑에 빠지면서 급류에 휩쓸려 레프팅을 시작한거야 . 죽는줄 알았지 . 세상에 그만큼 놀란건 처음이었어 . 컴컴한 폭포로 막 떨어질 찰라 난 구해졌어 . 엄청나게 질긴 명을 타고 태어난거야

망할 놈의 도랑 . 난 도랑이 진짜 싫어 ... 가끔 풍덩 빠져서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만나고 .. 난 배가 아니니까 흐르는건 질색이야 .. 세상을 알리와 함께 당당히 달리고 싶다는거야 . 어쨌든 나는 귀한 몸이 되었어 오전에는 공주 ... 오후에는 왕자를 모시는 명마가 된거야 .. 히히힝 ....


자라는 내 친구 분홍 구두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어 ... 자라가 흘린 눈물방울이 나한테 떨어지더군 .....
내 주위는 나처럼 모두 가난했어 . 가난은 보석을 언제나 감추고 있다가 . 때로는 눈물로 ..... 땀으로 나한테 떨어져서 따스하게 스며들고 ... 늦은 밤이면 몰래 내 안에서 빛을 내지 .

자전거란 놈은 동그란 바퀴로 희망을 절망으로 돌려 놓지만 난 달리는 만큼 앞으로 나갈 수 있어 ..



알리는 내게 3등을 하자고 속삭이더군 ... 날 잘 봐 . 집 주인이 물 쓴다고 야단 치는데도 아이들은 나를 깨끗이 씻어서 계단 아래에 모셔두었어 ... 비가오면 내가 비를 맞을까봐 자다가 튀어 나오는 애들이야 .. 내게 3등이라니 ...

강변의 그 길은 참 멋지더군 ... 하지만 난 흐르는건 싫어하니까 앞만 보고 달렸지 . 내 얇은 바닥은 대지의 온기를 알리의 심장에 전해주었고 ... 땀이 비가되어 떨어지고 있었지 ... 우리는 길의 끝까지도 달릴 수 있었어 ... 덕분에 구멍이 더 커지고 몰골은 더 추해졌지만 .. 내가 그런걸 상관하겠어 ?

알리와 나란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못가에 앉았어 ... 휴 ... 힘든 하루였지 . 이제 난 더이상 달릴 수 없을지도 몰라 ... 하지만 길 위에서 끝까지 살아 남은 자들은 알거야 ... 하오의 햇살 한 줄기에도 설레는 내 맘을 ...


2001 . 7. 30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