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 바다

친구

곽 경택 영화



중호야 .

음지에 있는 고딩이 열심히 뛰어야 양지의 고딩이 더 빛 나는 법 . 교실의 맨 끝 책상 ... 롤러장 계단참과 아파트 복도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반짝이고 있었지 . 극장의 2층 좌석은 꿈같은 응달이었어 .. 아 ..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군 . 우리에게는 분장실 또는 무대로 준비되어 있던 곳

화장실에는 극장 안보다 더 멋진 영화가 기다리고 있었지 . 한 단 높이 올라있던 소변기들 앞에 서면 우리는 단상에 서있는 종마가 되어 .... 우리의 미래 같은 마빡 앞의 벽을 보며 오줌을 갈겼지 . 단 위에 서있는 말 . 알싸한 냄새속에 담배연기 피어오르고 .. 말은 일단 달리기 시작해야겠군 ..

진숙아 ..

올라갈수록 추락해가는 동네를 떠나려고 그날 밤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었지 . 사랑이란게 담배 같아서 깊게 한 모금 빨아당길때마다 줄어들더군 ... 스무살 . 같은 나이에 세상을 출발하는 남자들이 왔는데 ... 이미 계단의 가운데에 앉아있었지 .... 아래 위 어딜 봐도 까마득하기만 해서 움직일수가 없던 밤 .

엘리베이트도 나무 계단도 아니고 ... 달 동네 차가운 콘크리트 계단에서 .....  사는게 너무 좆 같아서 떠나기로 한 밤 담배 한대 피는데 누군가 옆에 앉았지 ... 달을 보면서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 그마저 가버리더군 . 언제나 이미 계단의 중간쯤에서야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게 되더군

상택아 ...

항구 도시는 풀어 놓은 허리띠처럼 바다와 산 사이에서 허벌나게 늘어져있지 . 집이란건 산동네에 있었고 ... 옥상에 올라가면 부두가 보이지 . 밤 부두 .. 멀리 통운회사의 네온 너머 밀항을 꿈꾸는 등불이 졸고 있고 ..... 바위에 붙은 조개 딱지 같은 형광등이 깜빡이면 ... 입깁처럼 나오는 말이 있었지 .. 서울 가자 .

부두의 불 빛들과 나란히 떠나가던 밤 기차는 열일곱살을 마취시키고 중독들게 했었지 . 가방을 들고 나온 날 밤 그 빛들은 손에 닿을듯 가까이 있더군 . 이제 사는게 자꾸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밤 . 먼 바다에서 돌아온 배의 마스터 등이 부두의 가로등과 나란히 서 맞담배를 피는군 ... 빛은 그날처럼 발광하고 ...

동수야 ....

누군가는 그래야만 했지 . 쇠파이프로 복도의 창들을 다 부수고 현관의 진열장을 박살내버려야만 했어 . 그리고 거리로 나갔지 . 그날 이후 길바닥에 꼰대들이 다 사라졌더군 . 그날부터 세상에는 떠나는 한 사람과 남아있는 전부로 나누어졌지 ... 그후로 오랫동안 비가 내렸고 ..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어 .

죽은 몸을 닦아내는 물은 비가 되어 쏟아지고 ... 벗은 남자들이 잡혀가던 사우나의 증기는 ... 어시장의 차가운 물방울로 튀더니만 .. 씨팔 ....비 ... 억수 같은 빗속에 피가 빗물을 타고 흘러가더군 ... 그리운 바다로 가겠지 . 어느 한낮 파도를 한참 보고 있었지 ... 어차피 쏟아지면 다 흘러가는건데 ....

준석아 .....

우린 언제나 해변에서 너무 멀리 나와 있었지 . 바다의 한 가운데라 해도 두렵지는 않았어 ... 소주잔에 떠오르던 얼굴들 .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이에는 비가 내리고 유리벽과 철망이 서 있더군 . 돌아서서 손을 마주하고 싶은 우리에게 공간은 너무 좁더군 ... 벽을 다 부수고 싶지만 쪽팔아서야 안되겠지 .

복도 끝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지 . 처음에 작은 빛 하나가 눈을 찌르더니 ... 세개의 다른 빛 줄기가 모여들면서 막다른 한면이 빛으로 열려있었지 . 감옥의 통로로 태양이 들어오고 ... 잘게 부서진 물결이 밀려왔지 . 한 발만 더 내딛으면 미끄러지듯 지난날에 갈 수 있었지 .... 함께 할 수만 있다면 ...


닫힌 문들이 침묵하고 있는 복도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고 .. 빛은 길고 긴 그림자로 극장 안을 새까만 응달로 만들어 놓고 있었어 . 음지에서 양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작은 한숨이 극장 안을 떠돌고 있더군 ..... 깊은 바다에 이르기도 전에 기슭만 바라보고 살지만 ... 쪽팔리게 살고 싶지는 않은 한숨들이 증기가 되어 극장 안에는 실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 ...




2001 . 8. 13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