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 인천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영화


부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오십년전부터 전해지던 노래에 ...
뛰어 노는 아이들의 앞으로 ..
바다가 막아서 있다 .

항구도시의 끝 ... 네모진 바닥의 끝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들 ....... 바다로 끊어진 길과 무심하게 등을 돌리고 서있는 커다란 배 ... 교복을 벗고 만난 첫 겨울 .. 자꾸만 양이 많아져 가는 바람 .


깊은밤 . 이를 악물고 한방향으로 달려가는 지하상가에서 ...
숙녀가 된 아이가 가지고 있는것들
입김이 남아있는 선물상자 .. 담배 연기 .. 샴페인의 울렁거림 ... 새끼 고양이 .
미로의 도시에서 ... 단 하나의 통로만 주어진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들은
문 닫은 상가 ... 흔들리는 불빛 ... 조금씩 닫혀져 가는 마지막 셔터 .
그리고 남아있는 것 .... 헤어짐


차이나 타운 ..... 할아버지 아빠를 용서하세요
유리창이 구멍난 아파트 ..... 우리 가족은 아마 재개발이 될 것 같다
금가고 구멍난 벽들은 다 무너지고 .... 새 집이 지어지게 되겠지
나는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 .

찜질방 .... 그들과 나는 다른 옷을 입고 ... 다른 꿈을 꾼다
나는 카운터에서 ... 문턱에서 ... 창가에서 그들로부터 나누어진다 .
아빠가 쌓아올린 벽이 창을 가로막고 .... 내 방은 어두워져 간다 .

다락방 .... 내 방은 자꾸만 꺼져간다 ... 수면이 낮아지는 만의 끝처럼 ...
잠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 풍화된 모래가루가 떨어진다
내 발바닥 크기만큼 구멍난 밤 하늘에 ... 나는 늦도록 끝없이 계속되는
무늬를 그려 넣었고 ... 고양이 발 만큼 달빛이 지나갔다

터미널
그 사람들은 아주 먼 바다를 가방에 담고 들어왔다 ...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미친 여자가 있었다 . 이 세상 어디에 미칠 곳이 있을까 .... 따라가고 싶었다 .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그 사람들은 힘들고 ... 지치고 ... 가난해 보였다 . 나는 그들이 싫었다
거지 여자가 있었다 . 무서웠다 .... 그런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
나는 내가 가늠할수 있는 거리만큼 너에게 다가가고 싶다

우리는 육교를 건너 갑갑한 검은물이 흐르는 하류를 따라갔다 .
제철공장에서 고단한 연기가 피고 .... 집들은 대낮에도 모로 누워있었다
서로 다른 의미로 전해지던 메시지가 우리곁으로 하나씩 지나갔다 .




공원
미스터 맥아더 ... 그대의 상륙을 기념하는 바닷가에서
그대 전우의 딸들이 유엔의 깃발아래 ...
미얀마 전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
승전을 건배하는 횟집길에는 매서운 맞바람이 언제나처럼 막아서지만
그대의 주력부대가 달려간 길을 따라 ...
수도로 진격해갑니다 .


파도를 헤쳐 달려온 우리의 딸들은 ... 불빛과 깃털과 노래가 터지는
철야 쇼핑 고지를 향해 ..... 아낌없이 총알을 쏟아내고 ...
23시 ..... 포성이 뜸해진 지하철로를 따라 점령군의 허무처럼
마지막 1호선 전차가 달려오면 ... 베이스 캠프로 돌아가야 합니다 .

제너럴 ... 그대처럼 .. 우리의 딸들은 결코 늙어가지 않을것입니다 .... 때론 ..
사라지기도 하겠지요 .... 바람부는 상륙의 땅에서 살아가다보면 말입니다 .

철길
단칸방에서 볼이 미어지게 할머니의 만두를 먹어본 사람은 알지
모두에게 잊혀진 ... 오래된 철로는 바다까지 이어지고 ... 레일을 따라 ..
낮은 지붕들과 조개 꾸러미와 늦은 일이 새김질하는 하얀김을 ...

두부공장 유리문 앞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알게 되었지
위생복 입은 아줌마들의 손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불빛과 ...
한동안 잊고 있던 손이 건네준 .... 무지개 칫솔 ... 눈에 들어온 담배연기 ...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굽이진 철길은 ...
우리가 자라는 만큼 ... 갈라지고 상해가고 때론 가로막히기도 하겠지만
언제까지나 ... 두개의 선이 나란히 갈 것이다 .

공항
나이보다 높은 벽에 갇혀 있던 아이들 앞으로 ...
코발트 블루와 ... 디지털 레드와 ... 포에버 옐로가 나란히 줄을 서있다 .
방황은 길었지만 선택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은 아이들 앞으로
나이보다 훨씬 많은 행선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1 . 12. 7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