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나타가 있는 가라오케
   - 하나 그리고 둘




밀려오는 물결 앞에 서있는 외로운 남자가 ...
조류에 쓸려 엉키고 젖은 홀에서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한순간 참회처럼 정적으로 돌아온 파랑에 ....
빠르고 가벼운 공기 사이로 한줄기 빛이 가라앉는다

발길에 채이는 가라오케 밤 . 흐드러진 실내에 ....
달빛 음절이 스며들면서 고요한 밤 파도가 다가온다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반복의 항로일지라도 ..
작은 물결이 키를 돌릴 수 있다는 바다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





    마지막 역 . 눈
   - 철도원






레일을 따라 흘러온 육신이 하나씩 객차를 덜어내고 ...
한 칸짜리 전동기차가 되어 도착한 눈 내리는 마지막 역
플랫폼으로 떠나간 사람이 돌아오고
겨울 저녁 텅빈 기차에 추억들이 ...
한 페이지씩 왔다가는 시각표 따라 떠나간다
드르륵 여는 문 . 갈탄 난로위 대야물이 증기가 되어 ...
오래전 웃음소리 실어 주는 밤 . 시간에 맞춰 신호기를 들고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에 저물어가는 역

흐린 저녁 . 한손에 신호기 쥔 늙은 철도원이
더이상 치울 이 없는 하얀 눈을 덮고 플랫폼에 누워있고 ....
늦은 기차가 지나간다 .
밤 열차 같을 삶이 ... 하얀 눈 속 플랫폼을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던 어두운 계단
   - 화양연화






스치며 공기는 한번 부유하고 가라앉았다
국수 사러가는 여자와 홀로 국수 먹고오는 남자 ...
두 어깨 사이 빛이 가늘게 떨렸다
닫힌 일상 담배연기 좁다란 복도를 지나
비밀이 휘날리던 붉은 커튼 호텔까지 .....
나란히 설 수 없는 운명적 경사로 기댄 계단이 있었다

단을 하나씩 밟으며 . 어깨를 돌리며 . 비껴서며 ...
통속의 복도와 허무의 빗속으로 향해갔다
재털이에 꺼지지 않은 연기 남아있고 ....
무거운 발길 화사한 기대 흐르던
지나간 밤 어두웠던 계단





   군산에서의 하룻밤
   - 박하사탕






사랑을 전해달라는 노래가 비오는 골목을 타고 흐르고
가난한 술집 문앞에 쪼그리고 있던 여자 .....
이끼 낀 이층 방에 몸 비비고 누워
빗 소리 들으며 ... 철길처럼 나란히 달리는
지나간 사랑에 기대 밤새 울어보던 밤 . 헤진 천에
아픈 잉크가 퍼렇게 베어든 골목길에 밤이 지나가고 ....

노을 지는 녹슨 선착장에 서있는 여자 ....
치마를 흔들고 지나가는 시큼한 바람 바다에 남겨둔다
흔한게 슬픔이라는 개 같은 밤
술잔에 떠다니는 서군산 포구의 바람





   빗속의 소풍
   - 감각의 제국






시대에 체념한 남자와 육신 하나 달랑 남은 여자가
우산 쓰고 빗속을 걸어간다 . 아버지가 가리워진 제국 시대
내리는 비를 향해 어찌할바 없는 외로운 성기 .....
우산이 마주보고 춤춘다 . 세파에 속곳을 벗어버린
속절없는 성기를 부질없이 숨가쁜 구름이 단비 적셔준다

세상사가 두개의 열정적인 밤 사이
짧은 순간일 뿐이라 깔깔대던 .....
비오는 밤 우산 속의 소풍





   빈 바다
   - 소나티네






허무라는 코드 남자의 마지막 바다
유배된 바다에 여자 홀로 남아 .....
그려둔 약속들이 덮여가는 모래밭을 걸어갔다
그 여름 바다에는 허깨비 같은 삶들이 모여 ...
인형극과 불꽃놀이와 자살게임을 했다
기연과 이별이 있었고 빈 바다로 여자가 쏜 총알이 날아갔다

기억이 지워진 여자는 모래 구덩이에 빠지고 ....
파도처럼 굽이진 길에 남자의 파란 차가 버려져 있었다
빈 바다에 여름은 허무라는 코드의 ....
바람을 타고 사라져갔다





   헤어지던 거리
   - 포르노그라픽 어페어






포르노라는 이름 하나 어느날 거리에서 주웠다
신비스러운 포르노는 창 넓은 카페를 거쳐 .....
빨간문 호텔 방안을 돌아 나와 .. 낯선 사람 들이 넘쳐나는
처음 온 곳으로 사라졌다 . 친밀한 아픔이 굴러다니는 .....
가까이 다가온 포르노에서 가리워진 빛들이
하나씩 풀려 ... 와인과 티가 있었고 절정과 공허가 있었다
욕조속에 천식과 알러지가 있었고 .. 미소와 미련이 잠겨 있었지만 ...
고백과 눈물이 있고난 후에야 포르노는 떠나기로 했다

엇갈린 이해와 기억을 뒤로하고 호텔 문을 나온 포르노가
주차금지 말뚝 박힌 거리의 사람들 안으로 사라진다
거리에 포르노라는 친밀한 아픔이 굴러다닌다





   길고 긴 터널
   -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달리는 기차가 터널을 지나간다
엄마는 아들을 잃고 한때 도망왔던 도시를 찾아간다
떠나던 밤 비가 쏟아지듯이 .. 아들의 생명이 타인에게 가듯이 ....
연극이 재현되듯이 모성은 윤회되어 간다
배우와 창녀와 수녀가 엄마가 되고 .....
새로운 생명을 안고 엄마는 다시 도시를 떠나간다

엄마의 깊은 뱃속과 같은 터널에 한줄기 빛이 조금씩 커져간다





   백화점 옥상 공원
   - 인랑






인간이 되지 못하는 늑대가 도시의 지하에서 울고 있다
음울한 하늘 아래 도시는 엄마의 피와 살을 먹고 있고 ... 밤이면
늑대의 품속이 되어갔다 . 늑대와 외로움에 위로 받던
갈 데 없는 소녀가 사랑한 곳이 있었다
도심의 백화점 옥상 공원에는 놀이기구가 있었고
바다로 가는 강이 보였다 . 흐린 하늘 위로 풍선이 날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밤 공원에서 소녀는 슬픈 늑대와 입맞춤을 했고
눈물이 달빛을 타고 흘러내렸다

빨간눈 늑대가 도시의 지하를 뛰어 다니고 있고 ...
소녀는 새가 되어 옥상 공원 위를 날아간다
도시에는 함께 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숲위에서 몽정
   - 와호장룡






무협은 오래전부터 몽정이 이상화 된 길이었다
적이 되기에는 애잔한 두사람이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수직으로 오르고 수평으로 날려온 숲 위에서 .....
휘청이는 가지를 타고 물기가 뻗쳐 오른다
줄기와 칼이 바람을 가르며 스스로 리듬을 만들고 .....
무한의 바이레이션으로 그리운 체위의 마개를 열어간다
벨 수 없는 칼에 뜨거워진 이슬이 허공에 튀어오르고

처음엔 물이었던 이상이 공기가 되어간다





2001 . 1 . 12
2003 . 10 . 29   Rev.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