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터널

살인의 추억
봉준호 영화






유리병 가득히 메뚜기를 담은 꼬마의 발 아래 ....
수로 터널속에 죽어 다 썪지 못한 여자의 몸 아래 ...
80년대가 남긴 물기가 말라가고 있다



시골은 왕진 온 여자와 성교를 한다

들판의 평화 아래 꽁꽁 묵힌채 공존하던 물음표 ....
빠진 성기 위에서 ... 축 없이 교감하는 엉덩이가 돌아간다
근무시간의 성기 . 여가의 귀후비게 . 시간외 주사기 ...
야매의 아늑함이 떡없는 방앗간의 속설을 전해주면
시골은 발라당 누워있거나 ... 발딱발딱 일어서거나 한다

짜장면집 영수증에 속 긁는 평준화 시대 시골은
바보나 변태를 속 뒤집히게 미워한다
식민지 시대 직진계단으로 공구상자 든 남자들이 오가며
조이고 분해하고 칠하고 닦아내다 .... 틈 나면
모락모락 김나는 번영과 안정 두 그릇 짜장면 앞에 놓고
손거울 같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향해 침 튀긴다

제국시대 구두에 민원용 덧버선을 씌우고 시골은 ...
거꾸로 매달린 고백이 찍어준 손도장에 이름을 세우고
주무르던 젖가슴 아래 운명의 틈새를 벌려보고 ...
무지랭이 흙에 무당먹물 섞어 이미지의 오르가즘을 기다린다



서울은 안개와 허수아비 사이를 지나간다

공습경보 울려도 플래쉬 밝히고 서류나 애무하는 서울은 ...
골고루 썪지않은 시체나 불판에서 타버린 고기보다
쓰레기장에서 불태워질 사연에 아둥바둥 매달린다
싸움질은 못하면서 더듬이만 발달한 서울은
비극의 옆구리에 일회용 밴드를 붙이는 역할 정도는 한다



시골과 서울은 서로를 씨발놈이라 부른다

시골의 다이어리에는 못먹는 과일들이 줄줄이 매달려있고 ...
서울이 과일 깎으면 물증 . 표적 . 함정이 껍질로 돌돌말려 나온다
서울과 시골이 볼 조명 아래 두눈 부릅뜨고 바나나를 까면 ...
어른은 나눠 먹은걸 얼음통에 다 게워낸다

시골이 사기 찾잔 읍내 커피맛에 젖어 있을 때
서울은 규범의 여자가 듣는 한밤의 라디오 신청곡에 들뜬다
시골이 손가락에 매듭 감고 가출녀를 그리워할 때
서울은 논두렁에서 가출하지 않은 가출녀의 최후를 찾아낸다

시골은 목욕탕에서 털없는 생식기를 검색하고 ...
서울은 변소앞에서 토막난 야담 덩어리의 진한 냄새를 추적한다
온탕물에 불은 뽀얀 얼굴로 여자와 잠자리를 준비하고 ...
거름밭 오두막집 빨래줄에 휘날리는 여자 속옷을 바라본다
껍질을 벗겨낸 하얀 상처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는 솔밭에 숨어있던 그림자를 불러낸다

비는 요절한 가수의 노래처럼 시간을 넘은 공간으로 흐른다
문란한 채도를 거덜내고 빨강 하나 컬트로 세운 ...
비는 ... 완전범죄의 처음과 마지막 페이지를 채우며
기다리는 자들에게 유혹과 미련의 음악이 된다

비가 그치면 사람들은 유전의 밭에 씨를 뿌린다
엠티에서 떼씹을 한다던 전설은 길바닥에서 여자 머리채를 잡고 ....
독안에서 좀먹은 노란 얼룩 비키니가 까발려지고 ...
무덤가 속옷 한벌 위에서 신음하며 정액 죽이기를 하고 ...
이상한 빨강 레이스 팬티를 이상하지 않음들이 열나게 쫓아간다

다시 비가 내리면 변함없이 흔적들은 지워진다
늦은밤 . 여자들은 길을 가야하고 공장의 기계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라디오는 살인의 전주곡을 보내고 티브이는 후렴을 붙인다
비는 어쩔수 없는 차가움으로 중독된 엽서를 띄운다



기차는 홀로 남은 남자를 죽인다

신념은 몽상을 때리고 기준은 광기를 때리고 추종은 반발을 때리고 ...
긴 호루라기 소리 ... 기차는 리듬으로 폭력의 마디를 잘라낸다
교감없는 전봇대에 매달리던 대답은 선로밖으로 튕겨나고 ...
청산할 수 없는 핏물이 대상없는 질문에게 뿌려진다

시간에 녹슨 못이 시대에 녹슨 다리를 잘라내는 서류의 서명란에 ...
보호자가 없다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선로에 폭력이 눕고 ...
기차는 시간을 맞추며 예외 없이 가책 없이 오고 간다
기차는 과거가 깔아놓은 레일을 따라 달릴 뿐이다



80년대는 눈 뜨는 여자를 죽인다

복숭아 조각 6 . 7 . 8 . 9 ... 어둠에서 나와 어둠 속으로 ...
80년대 .... 그는 단순하나 고유하지 않은 스타일로 말을 걸어온다
그를 위해 빨강 원피스 입은 여자가 선을 밟고 지나가고 ...
찢어진 우산의 소녀들이 그녀의 우중산책을 동경한다

솔숲 사이 그림자 ... 익은벼의 움직임 ... 플룻의 전주 ...
80년대 ... 그는 부드러운 손으로 계기판 스위치를 조작한다
그를 피해 중대병력과 까마귀는 도시로 날아가고 ...
밤의 시민들은 그의 비오는 하늘까지 동경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 욕구를 감추지 않고 ....
80년대 ... 때로 고독과 설핏한 타의의 관성에 술잔을 기울이면
사실에 흐린 주막집 창가에서 여자들이 피하고
관성의 반어법들이 나란히 서서 ... 미국과 그를 바라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앞에 비가 내린다

간결하게 남의 나라 현재를 평결한 미국이 구겨진다
뒤늦게 폭력의 지혜를 배운 서울이 총질 한다
배고픔을 먼저 배운 시골이 "밥은 먹고 다니냐" 물어본다
대답없는 80년대가 한번 뒤를 돌아보다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기차가 오지 않는 터널에 외길 시대의 총성이 메아리로 돌아온다



2003년 수로에 가방을 맨 소녀가 서있다

전래의 들판이 아직도 80년대의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
어린 소녀는 수로의 터널을 바라본다
옛날 일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평범하게 생긴 아저씨와
함께 .....












2003 . 5 . 16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