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락 잔에 눈 내리다

밀레니엄 맘보
후 샤오시엔 영화






잠에서 깨면 남자애는 튜브를 빨고 있다

라이터불 꼬마전구에 비등하는 요구르트빛 밤안개를 마시고 ....
비밀 처럼 피는 연기에 차원이 하나씩 지워지고
오줌발 또는 변기물처럼 외침은 흘러가고 ....
절정도 없이 추락이 벽에 기대고
침대와 변기 사이에서 환각은 슬픈 애정마저 배신한다

남자애는 냄새를 맡는다 . 속옷과 피부 사이 . 솜털과 땀샘 사이 .
거품 떠난 맥주 . 피우다 만 담배 . 흐르지 못한 촛농 .
다리를 벌여봐 . 허벅지로 절박한 코가 올라온다
피빛 플라스틱 . 그을린 재떨이 . 구겨진 캔
남자애는 가방을 연다 . 가릴데 없이 조각난 냄새들이 쏟아진다

엘비스 곁에서 엘피를 돌리며 남자애는 몰락한 궤도들을 리믹스한다
보일러 배터리 나간 집에 반듯한 수색영장이 들어오고
유리알 주렴에 빛살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젖은 머리결로 가방을 싸고 눈물을 흘리고
반복의 굴레는 ... 현관문 밖 밤공기처럼 서성이며 기다린다










잔에 침묵만큼 위스키를 채운다

코코아빛 진흙 . 섹스는 이진수의 코드로 교신하며 소진되어 간다
추운 결합 . 한벌의 성기를 다 감싸지 못하는 체위 곁으로
물속의 빛이 하나둘 깜빡인다 . 흐린 유리면의 성감
아날로그 모성 . 디지털 삽입 . 벼랑에 매달린 .
섹스는 리듬박스처럼 낯익게 샘플링처럼 속없이 처리된다

노란 네온 진흙 . 디스코텍은 균질하지 않은 모서리를 마모시킨다
일하지 않는 그들과 일 마친 그녀들이 젖은 풀잎을 태우고
끼어들고 뿌리치는 변함없는 속설들이 발길에 채인다
학교를 버리고 집을 나오고 동경을 훔치고 ...
플로어에서 만난 커플이 꺼져가는 빛의 방구석에서 멱살을 쥔다

푸른 진흙 . 라이터를 당기면 테크노 야광충이 한마리씩 날아든다
아삭바삭 씹히는 타버린 시간에 껌은 질식을 막아준다
집세 버는 엉덩이가 명망 있는 허벅지를 스치고
흔해빠진 만남이 재털이에 소복히 쌓이고 ...
미끄러운 흙 속으로 조금씩 더 깊이 빠져내려 간다



잠에서 깨면 남자는 요리를 하고 있다

사우나에서 지난밤 감각의 기포들이 문신새긴 등짝을 떠나가면
남자는 시간의 오차처럼 안개 자욱한 탕에 몸을 담는다
눈물의 이미지보다 먼저 티슈를 건낼줄 아는 ....
남자는 아끼는 라이터 하나만 간직한다
남자애의 집에서 남자의 집으로 ... 현관문이 좀더 거나해진다

마약을 미워하는 스님의 불경소리가 티테이블 위로 울리는 아침
낯선 칠리소스 상표 같은 남자의 국수를 먹는다
입맛은 숙명처럼 어긋난 관계위에 내려앉고
아침술 . 해장 담배 . 이방인의 첫끼니 .
테크노에서 불경으로 ... 거실이 생각 없이 공허해진다

폐쇄회로에 쓰러진 까만 원피스 . 비닐 봉투 . 열린 핸드백
환멸의 거미처럼 망에 걸린 먹이의 잔해들을 토해내고
모니터에는 색을 지운 현재가 익사해가고 있다
옷가지도 가방도 없이 핸드폰 하나 남은 ...
색유리에서 무채색 문턱으로 ... 침대는 여전히 식어있다



잔에 전환처럼 얼음을 채운다

조니워커 입장이 되어봐 . 녹아가며 빛과 향과 맛을 하나씩 잃고
안정 또는 각성의 약물과 증오 또는 파편의 게임과 스치고 ...
수채구멍에 캔맥주 또는 진저엘과 섞여서 떠나가면
담배 연기 또는 촛불 그을음처럼 잊혀져가겠지
가책 없는 빙산을 끼고돌다 인사도 없이 헤어지겠지 ....

눈의 나라 . 회상이 일상인 도시 . 차창에 흩날리는 저녁 눈발
전신주의 들녁 . 자국 없는 눈길 . 길고 하얀 기억의 띠
오뎅국물 익는 할머니 여인숙에 베이비핑크 전화기
소리 없는 대답 사이 . 흔적 없는 소멸 .
눈은 예감보다 먼저 내리고 기억보다 먼저 쌓여간다

눈속에 얼굴을 새긴다 . 베어낼듯 차가운 촉감이 피부를 떠나가고 ...
이마 코 입술이 사라지는 동안 몇번이나 바람이 지나간다
소리의 밖에서 ... 남자들은 조금씩 더 고요해지고 ...
추운 나라에 묻어둔 순간도 녹아가고 ...
집 없는 발길이 어두운 철책의 계단을 올라간다



잠에서 깨면 기차가 지나간다

통장에 남은 돈을 다 쓰면 .... 이별은 속성처럼 매달리고
터널 속을 달리는 차는 잠깐동안 비에 젖지는 않는다
헤드폰 하나로 단절되는 프레임 없는 장벽에
떠나가고 애원하고 최면처럼 돌아오고 ....
아픔은 길들지 않고 지치도록 눈앞에 밟힌다

남자는 몇 개의 숫자와 코트와 로션냄새를 남기고 떠난다 .
여관방 재털이 . 반 남은 오렌지 . 겨울낮의 햇살 .
잘 못 걸려온 전화처럼 남자 이름이 들리고
창가의 티브이 노이즈 . 불면의 새벽 .
남자는 와달라고 하면서 사라진다 . 저녁 거리의 불빛처럼 ....



잔에 한때 술이었던 물이 남아있다

마술의 테이블에서 꼭 쥔 주먹속의 동전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샴페인과 폭죽과 마법으로 취해가던 밤의 열기 속에
플로어 위의 동전 그와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흐린만큼 밝아지는 도시의 밤거리 ...
밀려가는 인파속에서 그들중 하나처럼 걸어가고 있을까

폭설의 겨울 . 광산이 사라진 거리에 오래된 영화들이 자리한다
기억할 수 있는 사랑은 극장의 간판처럼 덧칠되어 가고 ...
갓 배운 이국의 인사처럼 의미를 지운 느낌처럼 ...
먼길을 돌아온 1963년의 영화처럼 ....
밤이면 더 짙어가는 길목의 눈처럼 남아있다



잠에서 깨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회상의 지문처럼 아취의 매듭이 이어지는 터널을 지나간다
형광등 아래 부유하는 빛의 순간들을 밀어내면서
굽이치던 길이 언제쯤 수평의 진행을 멈추면
오차가 시작되는 단을 뛰면서 내려간다
돌아보면 ..... 10년의 흐름이 터널의 입구에 서있다

표류하던 푸른날의 밤에 두고온
술잔에 눈이 내린다
가로등 졸고있는 새벽 유리잔에
상실의 낱알을 찾는 까마귀가 내려온다

기억할 수 있는 동안 .....
술잔에는 눈이 녹았다가
다시 쌓여간다












2003 . 6 . 17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