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저편에서 성교하다

죽어도 좋아
박진표 영화






팅팅 부은 벽들이 아크릴과 네온으로 밤화장한 거리 ...
없어도 그만일 건물 귀퉁이 .. 주름진 눈꺼풀 아름한 유리쪽창 안 ...
앙상한 난로위 찌그러진 주전자가 아쉬운 날숨을 쉬고 있는 ...
누구나 보면 바로 잊어버릴 희미한 풍경에 ... 싸락눈이 흩어지고

거칠 것 없은 바람이 붙잡을 것 없는 길위로 불어와 ...
외로움에 지친 낙엽 하나 ... 따스함에 여린 비닐봉투 하나 ...
한갓진 고백으로 나풀나풀 날아오른다



헐겁게 살아온 의자가 나와있는 세탁소 앞 언덕길 아래에는 ...
언제나 질긴 욕구에 뒤틀린 도시가 가랑이를 벌이고 누워있고 ....
높은 동네의 낮은 일상이 지는 저녁 ... 문턱 삭아가는 방들끼리
한잔술에 맞절한다 ... 당신 건강해야 돼요 ... 내구연한 지운 우리집

누구나 철거를 짐작하고 외면할 늙은집에 ... 첫밤의 촛불을 켜면 ...
금간 벽 시든 철근이 꿋꿋이 성긴 돌모래에 파고 들고 ... 닫긴 창
녹슨 레일이 수줍은 홈속을 삑삑 울게 하고 ... 잠긴 문 찌든 틀이
빡빡한 구식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게한다 . 충만한 결합 하중에 ...
땅밑의 주춧돌 잡돌까지 한꺼번에 환장하는 ... 오늘은 뜨거운밤

관록의 똑딱이 스위치가 늦된 형광등을 떨게하고 ... 함초롬 벽지가
무딘 벽돌을 조여들어가면 ... 나이를 배반할 수 없는 기교로 빛나는
부활의 오르막 ... 경첩 입술이 노목 둥치를 물고 ... 잔 못 이빨이
니스 껍질을 긁고 ... 모래 혀가 뭉툭 자갈을 쓸어가면 ... 질펀한
늘그막의 신방 달력에 채점표 ... 참 잘했어요 .. 동그라미 다섯개 ...

당신의 밤보다 우리의 낮은 길어 ... 가릴것 없는 낮거리로 빼곡히
채운 동그라미 ... 묻을데 없이 덜렁이는 전기줄에 ... 전파도 매체도
없이 스스로 연소하며 ... 기꺼이 재가 되는 ... 무공해 자립 주거



옥상에 올라오면 .... 추락 시대의 급경사 파라펫 아래 ... 심성 깊은
난간이 조숙한 도시의 난교를 가려주고 있다 . 누구나 아랫도리
꼬이게 할 포르노 재개발로 태어난 ... 클리토리스 아파트 ... 지스팟
빌라 ... 오르가즘 타운의 국소 만족 치기 앞에 ... 난간은 몸으로 성숙
체위를 보여준다 . 벽돌 켜쌓기 빗쌓기 막쌓기에 ... 미장 하다말기 ...

세월따라 물따라 ... 온갖 기술을 껴안고 빙 둘러있는 난간은 언제나 ..
바람따라 발기한 도시에 무소유의 미소를 보낸다 . 비가 내리면 ...
팽팽한 결단의 빨래줄에 ... 속을 버린 속옷들이 휘청이며 젖어가고 ...
비그치면 ... 깊은 사랑의 칼날에 닭대가리 핏물로 바닥을 적시며 ...
놔둬서 깊어가고 버려서 얻어내는 ... 무위의 쉼터 ... 바람은 모르리 ...



늦저녁 시장통을 달려가면 ... 맞바람이 오래 삭힌 맛향기들을
풀어놓고 ... 백열등이 초조한 막사랑의 그림자를 감춘다 . 내 마누라
못봤나요 ... 튀김솥도 몰라 순대도마도 몰라 ... 콩나물 다라이도 몰라 ...
사랑이 깊어가면 병이 되고 ... 밤으로 길게 꼬리를 무는 턱 낮은
가게들의 한숨 ... 삭아가는 것들만이 아는 외로움 ......

좁은길 돌계단에는 ... 흐름에 초연한 모래돌과 짱돌이 저마다 배를
까뒤집어 있고 ... 사랑에 이름표를 달아봐 ... 가난을 꼬리표로
거칠게 늙어온 무명 골목 ... 가파르게 살아온 굽이계단이 꽃리봉을
달고 .... 여름비가 쏟아지면 ... 망가진 우산 하나 ... 몰려나온
낙숫물에 인사한다 . 떠나간것도 다가올것도 한순간인 것을 .......



선풍기 돌아가면 ... 한가한 삶에 지친 모서리들이 행복한 익사를
동경하는 곁방 너머 ... 바람 한점 없는 사각의 무대에서 ... 고여있던
질곡의 Y축 엉덩이가 ... 누워있던 인고의 X축 무릎 위에서 ... 가부좌
기마 결합 물결을 이루고 ... 살아있는 모든 물기가 헌정 추락한다

지랄할 열기의 복더위 한낮 정사에는 ... 낡으면 깨부수는 개발바람도
... 피고나면 뒤엎는 촐싹바람도 ... 생각나면 덧칠하는 닭살바람도
필요 없다 . 번식도 중절도 ... 절정도 소멸도 없이 만개한 이음새에 ...
지나간 시간이 먼지로 떠다니고 남아있는 시간은 햇살로 짧아지고 ...
저문 방의 저문 기쁨 창가에 지긋이 차오르던 황혼이 고개 숙인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전환을 꿈 꾸었을 언덕배기 동네
배달 오토바이 헐떡이는 가파른 길가 세탁소 골목계단을 올라가면 ....
포부 마른 젖가슴 쥐고 꼬부랑 잠을 깬 낡은 집 작은 방에 ...
너무 늦게 밝힌 촛불 하나 있어

도시의 변덕에 이골난 계절 바람이 지나가다
시간에 귀가 얇아진 문 앞에서 ....
가만히 몸을 돌려 피해간다



2003 . 2 . 12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