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아있는 거리

집으로

이 정향 영화



맑은날 . 짜장면 한그릇에 뽀얀 안개가 피어오른다
시장 바닥 작은 중국집 .... 허름한 나무탁자에 하얀 물컵 ...
미닫이 문 역광이 건너편 의자에 그림자 하나 떨어트리고
김이 사라져가는 면발 너머 보리차 한잔으로 축이는 주름진 목선 ....

젖가락이 휘여위여 허기를 저어가면 .... 고적한 눈빛 머물고
빈그릇 위로 무심히 꺼져갔을 모래바람이 이제야 돌아오는 한낮
기억의 우물 깊이 ................ 울림으로 떠도는 거리



후두둑 빗소리 잠의 자락에서 .... 날숨처럼 하얀 천이 흔들린다
접힘없는 공간으로 바람에 밀리는 비냄새 ... 느닷없는 부재의 흔적에
상심의 순서 따라 줄에 걸린 빨래를 하나씩 걷어내면
소담한 쪽마루 너머 .... 안개비에 함박젖은 산허리 팔을 벌린다

처마가 그어놓은 경계따라 .... 비는 꼬마의 변덕처럼 오락가락하고
기억의 순서 따라 ... 빨래를 하나씩 다시 널면
말간 품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 손 내밀면 맞닿을 거리



맨 뒷자리에 앉으면 ... 버스는 옛날로 덜컹이고 휘청이며 달려간다
외면에 지친 정류장에서 ... 차창으로 까망 비닐봉지 하나 날아오고
오래 미루었던 회한에 창을 열면 .... 먼지바람 남기며 버스는 떠나고
손잡이 찰랑찰랑 고개를 흔들고 .... 돌아보면 길 하나 사라진다

마지막 정류장 ... 가난한 버스가 길게 굽이돌아 멀어질때마다
시간은 광주리 안으로 빠져나가고 .... 기다림으로 기우는 햇살에 ...
지워져가는 바퀴 자국 밟고 걸어오는 ............ 길보다 더 먼 거리



늦은밤 닭국 한그릇 마주하면 .... 냄비 가득 노란 미련이 덮인다
달그림자 가벼이 .... 바람벽에 미망의 얼룩 그려넣고
나물 보퉁이 이고가서 장닭 바구니로 돌아오던 ... 비젖은 발길 소리에 ....
벽에서 흔들리는 그림자 .... 성마른 튀김 일상 ... 물기에 빠져든다

네귀가 흐린 방 .... 기다림 자국 바닥과 외로움 버팀 벽 ....
닫아둘 문도 창도 없이 .... 떠나감을 향한 마루에 나오면 막아선 산
하늘 호수 .. 넉넉한 닭국물에 비치는 ......... 그 한 마음의 거리









이발소의 저녁 ..... 과거가 잘려나가는 거울안으로
시간의 조각이 유리면에 하나둘 금을 그어놓으면 .... 촉수낮은 불빛
어슴프레 가늘어진 바늘귀에 나란히 맞춰 자른 실자락처럼 ...
산안개에 젖은 동그마니 굽은 등허리가 .... 곁에 들어온다

부엉이 소리 밤 응가에 .... 거적문 곁에 하얀 숨결 비치고
달무리 타고 찾아온 .... 너구리 고개 갸웃하는 .... 쪼그린 이인조의 밤
대숲 바람 불어와도 든든하게 .......... 손 닿을곳에서 지켜주던 거리



하루를 소진한 밧데리로 ..... 세월을 갈고있는 할배에게 길을 묻는다
구겨진 골목 지나 ... 한숨피는 울타리 따라돌고 ... 벙어리 둑길 넘으면
한고생 가게 나오지 .... 굽은등 나무 길 오르면 .... 고개숙인 삽작문 보여 ....
눈 감으면 나비 한마리 날고 .... 자전거 할배 등짝에 기대 돌아오는길

거친손 버스 정류장에서 .... 쵸코파이 너른 신작로 지나 ... 비녀도둑 비탈길 ...
이천원 지폐 언덕길 .... 나물 보퉁이 들길 .... 가슴쓸이 오솔길 ...
등뒤에서 같이 멈추고 따라 걸으며 ......... 언제까지나 기다려주던 거리



어느밤 크레용으로 꼭꼭 눌러 그린
보고싶다 ..... 라는 그림엽서 속
외길에는 ..... 아직도 남아있는 거리가 있어 ....
돌아보면 손흔들고 있는
할머니












2002 . 5 . 14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