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우리집

the others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영화




우리집은 생각의 부피를 담고 남을만큼 큰 집이다 .
전쟁과 평화 ... 새로운 소식들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의 우리 집에는
서로 다른 방들이 시간을 달리 밟으며 계절의 끝으로 가고있다 .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집을 소개하면 ....

창 .... 그녀는 언제나 커턴을 닫고 있어야 한다 . 온전히 자신의
존재로서 품어야할 많은것들을 위하여 .... 밖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만
팔을 벌리고 살아가야한다 . 어둠속에서 태어난 본능을 누구보다
따라야하는 그녀이지만 ..... 때로는 억누를수 없는 거부를 드러낸다 .

문 .... 그는 잠긴채 있어야 한다 . 열쇠로만 열어야하고 ... 과거가
잠겨야만 현재를 열어주는 덧없는 집착으로 하염없이 외로워지지만
밖을 가로막고 안에서 피어나는 빛과 소리만 담아야하는 ...
배타적인 팔자에 애써 기대고 열쇠를 기다리며 무심한 시간을 보낸다 .

밖에서 보면 우리집은 .... 스스로 외모를 추스려야하는 고적한 일상으로
알맞은 넓이의 연못을 발 앞에 두고 ... 시간에 따라 변하는 제 모습을 본다 .
비추임이란 그 자체로 닫겨있는 일이라 .... 연못은 네개의
모서리로 풍경을 자르고 .... 부피의 차원 하나를 지워내어서
안으로부터 ....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서있는 집을 담아낸다 .

가끔 ... 집을 타고 드는 공기속에 알 수 없는 빛이 섞여오고
어두움의 밖에서 다가오는 발자욱 소리가 박동으로 가깝게 들려오면서 ...
우리집은 해풍을 타고 조금씩 더 짙어오는 안개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마당의 한 쪽에는 낮달을 닮은 별채가 있다 . 쉽게 보이지 않지만
변하지 않는 혜안으로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본채를 비추고 있는
별채는 숙명적인 시간의 오차에 맘 쓰이면서 .. 종일 고개 숙이고 있다 .

다시 안으로 들어오면 .... 아래층 거실은 차가운 오해와 의혹으로 ....
왜곡되어가는 창가에서 .... 비극을 기억하는 긴총이 회한의 고개를 내미는
묵은 고리짝과 마주하고 ... 한바탕 소용돌이를 예감하고 있다 .

식당은 남아있는 빈자리에 상처와 거역을 앉히고 .... 그를 바라보는
부엌은 .... 거실을 피해 머물고 있는 빛의 분노를 설득하고 있다 .
열려진 문틈으로 침묵에 갈등하던 피아노 방은 .... 금기의 손길로
약속의 덮개를 열고 ... 펼쳐진 악보 너머의 음계를 짚어간다 .

윗층으로 올라가면 ..... 드레싱 룸이 하얀 미사포를 쓰고 시간의 스텝으로
작은 춤을 추자 ... 자각의 유혹이 거울 속의 그녀를 빤히 쳐다본다 .
작은 침대의 아이들 방은 철딱서니 없이 ... 커텐과 장롱속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칠해놓고 ... 엄마를 미워하는 딸의 들창을 열어놓는다 .

안방은 .... 섬세하게 분절된 면의 창에 잿빛 체념의 이슬을 담고 ....
망각의 습기에 눅눅해진 남자의 군복 냄새를 마지막으로 .... 돌아눕는
미망의 침대와 함께 지나간 날들의 하룻밤을 되새기며 한숨 짓는다 .
그리고 막다른 계단을 따라가면 .... 깊은 잠에 잠긴 옥탑방은 연민의
한줄기 바람에 .... 여전히 감은 눈으로 먼지속에 접혀있던 얼굴을 내민다 .

돌아보면 전환점이 될수도 있을 ... 긴 테이블이 있는 방 .... 그에게는 대답
없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 활자와 그림으로 익힌 지식 밖의 불문율들에
곤혹스러운 .... 그의 턱 밑에서는 언제나 두개의 다르고 엇갈린 것들이
고통에 차있었고 ... 때로는 필연의 고백을 강요당하기도 하였다 ... 그는
그 모든것을 알면서부터 .... 슬픈 존재일수 밖에 없었다 .




그리고 이들을 이어주며 ... 이들보다 출렁이는 두개의 이름이 있다
복도는 바람을 닮았다 . 그는 어두움 속에서 자신을 알리려 소리내고 ....
누군가 돌아보게 한다 . 그는 때로 모든것을 엇갈리게 만들어 놓기도
하지만 .... 부유하는 두개의 예감 사이에서 밀고 ... 혹은 밀린다 .

계단은 파도를 닮았다 . 그녀는 쉽게 흥분하고 소리치지만 ... 마음 한가운데
평정의 턱을 두고 ... 이내 하오의 차분함으로 돌아온다 . 절박과 의문의
부호를 골절마다 심어두고 ... 그녀는 빛과 어두움 ... 비어있는것과 열망하는것
... 호된 의혹과 몹쓸 기대 사이에서 ... 마음 졸이며 시간을 보낸다 .

이쯤에서 짐작할지 모르겠지만 ... 우리집에는 우리의 일상 너머로 ....
손댈수 없는 낯선 두려움과 아픔이 자락에서부터 차오르고 ... 때로는
부정의 염원을 품은 중얼거림이 밟히기도 한다 . 우리집은 아마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빛을 담아두기 시작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


그래서 우리집을 영화라고 부른다 .
더불어 복도와 계단을 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
모난 개성을 가진 방들은 지금도 .... 열쇠구멍에 들어올 신호를 기다리며
태우고는 사라질 감성의 불씨를 준비하고 있다 .

늦가을의 비는 공기를 조금씩 더 차고 흐리게 하고 ...
고독한 섬의 해무가 밀려오는 우리집 ......
여하한 능멸도 허락치 않았던 철문의 허리춤에 작은 패말 하나 붙는다 .
.... SALE ....

그러나
복도에 해묵은 램프불 그림자 흔들리고 철컥이는 열쇠소리 들리는
이 집은 우리집이다 .

2002 . 3 . 1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