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줄 맨 끝자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조엘 코헨 영화



1
너무 뚜렷한 현실은 꿈으로 돌아온다 .

노이즈가 사라진 텔레비전 화면처럼
...... 언제나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반복되던 오후 ....
뜰의 잔디에 아스팔트를 덮는 세일즈맨이 방문하자
아내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 두개의 다른 예감이

일미터 간격으로 오십년대 소파에서 가라앉으며
...... 변화할게 하나도 없을것 같던 그 날에도 ......
몸속 깊이에서 털이 밀려나오고 .... 땅속에서 잔디가 솟아나고
블라인드 아래 찬공기로 클래식 피아노가 흘러내렸다
우리는 그때 이미 그런 것들을 다 알고 있었다 .

2
죽어가는것과 죽는것은 익숙함과 낯설음의 차이뿐이다

과거를 지우는 현재의 독물이 들어오던 그 시각
내가 없는 미래에 남아있는 눈동자들이 반짝이고
불멸의 건반음이 별볼일 없던 생에 마지막 손을 흔들고
낯선 사람들의 낯익은 만족이 희미하게 지워져갔다 .

전날밤 . 아내의 납작해진 엉덩이 비행접시가 왔다
교도소 뜰은 외계로의 선착장 .... 남다른 준비는 끝났고
우리 부부 내일은 은하 너머에서 만나겠지
살면서 한번도 좁힐 수 없었던 시간의 틈 사이로 .....
땅에 묻힌 머리털은 익숙하게 자라난다 .

3
재능이 떠나간 빈자리에 기다리던 섹스가 들어선다

소녀의 입술이 급회전하자 핸들이 돌고 휠이 난다
지구의 줄 맨 끝자리에서 헛돌고 있던 중년 인생에게
돌지 않고 다가올게 없다 ..... 아내와 소녀와 사형선고 ......
문라이트 소나타 ..... 살인후 보도블럭의 달그림자 회전

아내는 임신중 ..... 이라던 소식은 카페인 가득한 커피
깊이 들이마신 니코틴 ..... 죽은 자궁속에 남은 수정란
교도소 천정에 매달린 아내 ...... 보도 끝에 서있는 나
어둠속으로만 향해 배를 저어가던 우리 부부는
가질것도 버릴것도 ...... 이을것도 떼낼것도 없는 밤하늘 .







4
빛은 시간과 시점에 따라 모양이 변해간다

진실은 미끄러져 구르고 과거는 어긋나게 비켜 지나간다
나는 그를 죽이고 그는 아내를 죽이고 아내는 나를 죽이고
삼각 파국은 변호사의 거위간 밥값이나 만들어주고
론도 알레그로 욕망은 소네이트 안단테 허무로 돌아온다

그녀는 우주로 떠난 남편 위해 상복을 입고
소녀는 위대한 작곡가의 그늘에서 허리를 비틀고
아내는 화장발과 코르셋을 비운에 넘기는 동안
나는 평화로운 피난의 균열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소스라칠 평행선이 끝없이 시간위를 지나가는데 ........







5
사람들의 등 뒤에서 살면 모순은 일상이 된다

거울속에는 좌우가 바뀐 균형과 편견이 맴돌이 한다
라운지 밴드의 스윙리듬 피안에서 달빛 한줄기 기다리고
그랜드 피아노 커턴자락 소녀의 어깨선으로 다가가면
난파선의 밤에 ..... 등대빛이 아다지오로 깜빡인다

아내 팔아 눈먼 돈 빈배에 실어 보낸후 .....
폐장한 백화점은 짙은 네온에 하얀 가운만 걸치고 기다리고
매니저방 시가 나이프에 배설의 끝물이 묻힌다
팽팽한 콘트롤 창 금이가고 살인으로 정산된 깊은 밤
낮은 음자리 세음절의 박동에 물빛 잇단음이 쏟아진다

6
담배는 현실에 연기의 폭만큼 간격을 준다

타이프로 찍어보면 덧없이 천박한 아내의 부정에 .....
기괴한 과거와 배부른 현재에 목젖 떠는 정부의 미소에
포취테이블 온더락스잔 너머 파릿한 소녀의 위로에
의미가 희석된 담배연기가 멀리멀리 퍼져간다

디너뒤 차고 문턱에서 .... 소녀의 방 곁다리 의자까지
지긋한 어두움이 소심한 밝음을 밀어내고 나면
미친 미망인의 나레이션을 타고 올드패션 비행접시 날아들겠지
지구에서 부부생활은 식인종과 표류인간의 내밀한 협연 ......
욕정 건반에 방랑 페달이 쉬임없는 엇박자로 이어진다







7

줄이 끊어진 추는 꿈꾸던 무한궤도 여행을 한다

낮에는 드라이클리닝 원하는 호모 대머리 귀털을 깎고
밤에는 와인클리닝하는 아내의 거품 종아리털 밀고
질퍽한 공기에 여린 솜털의 꾸밈음이 다가오지만 .... 나는
딸림 화음 다 버리고 오선마저 상실한 의미없는 음표 .

아랫도리가 외면하고 가슴이 식고 머리가 흔들리는 나날에
선택의 줄 맨끝에서 몸통의 여운 머리털을 잘라내며 ......
느와르 일상을 배반하는 새하얀 가운으로 서있는
나는
거울에서 만난적이 있겠지만
이미 사라진 이발사다



2002 . 7 . 2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