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두고온 곳
   - 원더풀 라이프






당신은 그 곳을 기억할 수 있겠는지 ...
현관 접수계에서 ... 이미 마감된 이름을 부르고
다시 한번 지우듯 밀려오는 안개속에
막 도착한 간이역처럼 겨울 아침이 기다리던 .....

7일간의 돌난간 . 빛이 깊은 창 . 열광 시대의 확성기 ...
붉은 벽돌에 시간이 덧없이 맴도는 ....
학교 게양대 . 도립병원 대기실 . 구청 돌계단
회벽 복도 천정에 매달린 며칠 남은 달 ....
열망하던 물기가 쌓일 데 없이 싸락눈으로 흩어지는 밤
당신은 그 곳에서 기억 하나 남길 수 있겠는지 ...

작은 밴드가 연주하는 노래의 작은 북 장단
전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작은 이야기 ...
접혀진 책갈피 . 먼지 덮인 필름 . 푸른 창가 빈 침대
순간으로 영원을 버려야하는 사랑 ....
당신 기억에 ..... 그곳이 지워질 수 있겠는지







    철로를 따라가면
   - 고양이를 부탁해







바다로 가로막힌 부두에서 길은 시작되었지만
긴 통로 앞에서 셔터는 닫혀가고 있었다
구름다리 건너 개천을 따라 가보았지만 ....
등을 돌린 집들과 굽어보는 공장 연기 사이에서
겨울 오후는 염색이 잘못된 것처럼 흐려졌다

전철 타고 번영이 찢다남긴 솜사탕을 사러가고 ...
바다 건너 섬으로 각오가 찢어진 일 나가고
돌아오면 ... 도시가 버린 낮은 지붕들을 따라 ...
기차가 사라진 철로가 굽이진다 . 두개의 은빛 약속처럼
끊어진 철로가 ... 맑은날 하늘로 이어진다







    공책에 여름 한장
   - 이웃집 토토로







공책에 기다림이라고 쓰면 물방울 하나 떨어진다
비 .... 우산 두개와 버스 정류장을 그리면 ...
가득히 비가 내린다 . 표지판과 나무와 등을 그리고
바닥을 깜깜하게 색칠하자 ... 등에 불이 들어온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 졸음이 빗방울에 묻는다

우산을 조금 기울이고 ... 이파리 쓴 털복숭이를 그리자
빗줄기가 하나둘 사라진다 . 나뭇잎에 매달린 빗물이
우산에서 튀어올라 ... 별이 되어 흩어지고 ....
하늘에는 비가 반짝인다 . 노란 불빛 버스가 온다

비그친 정류장 공책에 .. 여름 .. 이라고 쓰자
바람이 불어 팔랑팔랑 넘어간다







    강을 따라 올라가면
   - 지옥의 묵시록







바그너와 네이팜의 불놀이 . 새벽바다 삼각파도 물놀이
풍요에 설사하는 전쟁놀이 . 향수병 카우보이들 뱃놀이
알 가슴 버니들 마당놀이 . 살풀이 이방인들 인형놀이
위스키 마리화나 사이키델릭 . 유니폼 히피들 놀다가요

퇴각하는 순서처럼 옷을 벗는 하얀 종이 미녀들
강물에는 두번 들어갈 수 없다지 ....
체념한 폭우 . 매복한 미래 . 정글을 향하여 ...
환각에 삽입하고 환멸에 사정하라

도렁강 구름다리에 불우한 라커의 노래가 흐르고
판단을 버린 전사들의 몰살 놀이공원 ...
안개가 사라지는 새벽 ... 소 한마리 내려오고
놀다가 죽더라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
허물을 하나씩 벗어내는 공포







    어느 소녀의 방
   - 엑소시스트







날봐줘 ... 무모하게 하얀 시트에 오줌방울 핏방울 ...
잎새 물기가 서리로 풀어지는 밤 ... 창 밖으로 긴 계단
현관에서 계단 ... 떠다니며 내릴데 없는 유혹 ...
손 뻗으면 들리는 소리 ... 고개 빙그르 돌려도
아무도 없어 ... 어두운 속 깊숙히 들어와

씹해줘 ... 문 열리면 옷 벗겨지고 ... 창 열리면
가랑이 벌어져 ... 배 내민 침대가 뻗대면 ...
굵다란 장롱이 뒤척여 ... 갓등 알전구 불 밝히면
피 흐르는 작은알도 곤두서 ... 아빠 없는 방 ...
빈 배에 커튼 날리고 ... 그리운 진동에 침대가 떠올라

도와줘 ... 실핏줄 네온이 되고 눈동자 가스등이 되고 ...
밝히다 죽을 밤의 늪에 ... 연인들이 학살되고
연보라 가지에 걸린 모가지들 ... 바람이 잦아들고 ...
걷어 내지도 못하고 ... 흘린 피 씻어내고
문과 창을 닫고 ... 버림 받은 처녀로 남아있어

믿어줘 .....







    파란 통 열쇠 자위
   - 멀홀랜드 드라이브







은빛 미소 핀업걸이 벽에서 나와 별빛 도시에서
젖가슴 같은 빌라와 숨긴 상처 같은 이름을 얻고 ...
지우개 달린 연필 기억력의 스타가 된다

소 없는 목장에 깜빡이는 외등처럼 ... 홀로 오디션을
통과하고 ... 영화의 성욕처럼 연쇄 살인을 치르고 ...
그녀 ... 죽은 꿈이 안치된 푸른통을 찾는다
내 안으로 들어온 가수의 노래처럼 끝없이 울면서 ...

썩어가는 육신이 숨겨둔 두갈래 밤길에서 돌아와
낯익은 열쇠 낯익은 구멍에 돌리면 ...
팬티 속의 묵은 슬픔 연기속에 사라지고 ...
눈물의 포만감 핀업걸 ... 벽으로 돌아간다







    고요한 수영장에 달
   - 투발루







조용히 ..... 풍덩 . 천정에서 떨어진 돌 . 뚱보 소녀의 다이빙
단추 입장권 . 오줌싸개 인형 볼록배 . 녹슨 구리 나팔
하아이언 기타 . 하얀 튜브 .... 수영장은 달을 꿈꾼다
언제나 잠든 도시에 그친적 없는 비가 내리고 ...

가만히 ..... 네모난 기억 속으로 ... 둥근 어항에 비를 담고
여자가 들어온다 . 나무바닥 . 문짝 . 천정 . 돌조각이
엿보려고 벌어진다 . 말라있는 문턱에 속옷을 벗어두고
젖어드는 가슴에서 ... 수영장은 달을 본다

고요히 ..... 여자는 머무는 바다에 그리운 바다를 포개고 ...
같은 가슴과 다른 눈으로 서로를 애타게 훔치며
사랑이 붉은벽을 허물면 .... 꽃잎이 흘러가듯
두손을 포개듯 ... 수영장이 달을 따라간다







    내가 오줌 싼 마지막 거리
   - 리틀 청







내 나이 아홉살 ..... 티브이로 노래를 배우고 거리에서 돈을 배웠소
돌아가신 할머니 . 떠나간 유모 . 돌아오지 못하는 형 들어보오
엄마 아빠 없이 살순 있지만 내사랑 없이는 심장이 얼어붙고
매질을 해도 잊을 수 없으니 차라리 장님이 되는게 낫겠소

나는 홍콩 차일드 ..... 식당에서 자랐고 콜걸 누나랑 친하오
내 자전거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 내 하루는 번영으로
주름져 있지만 ... 내가 가는 곳은 거리에 배반당한 ...
작은 골목길 푸른 수채 ... 어른들의 팔자를 설거지하는
내사랑 앞에 말문이 막혀 ... 오줌만 마렵소

나는 차이니즈 피플 ..... 할머니 상여는 바람에 흔적도 없어졌소
강건너 다마고치처럼 자라나는 집들이 누구네 것인지
이제 나는 상관없소 ... 어디론지 사람들이 떠나가고 ...
작별인사도 없이 마지막 길에서 ... 붕알은 내 땅을 향하고 ...
고추는 큰나라를 향해 ... 오줌이나 갈기겠소







    잃어버린 튜브
   - 친구







산동네 계단 가운데 앉아서 담배 한대 얻어 피면
아래 위 어디를 돌아봐도 밤은 까마득하고 ...
출발하는 나이에 갈데 없이 ... 추락하는 계단 앞에는
바다를 가로막은 ... 별보다 많은 밤부두 불빛들 .....

시체를 씻은물 . 빗물 소주 한잔 . 깊이 찔린 핏물
흘러온 바다가 ... 감옥 복도에 밀려오는 한낮
돌아보면 기슭도 수평선도 너무 멀리 있고 ....
우리가 붙잡던 지난날의 튜브는 어디에 갔을까







    국경으로 가는 길
   - 아들의 방







문을 열면 또 하나의 문이 기다린다 . 정박한 배의 홀수선 ..
승려들의 춤 ... 무심히 스치던 것들이 작은 질문을
속삭인다 . 아들이 죽은 오후 . 태양이
벼룩시장 앙티크 좌판에 ... 뉘우치듯 쏟아진다

우연이 물제비로 그리운 물가에 파랑을 만들고
아들 없는 밤길에 불빛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
남아있는 사람들이 밤을 지나온 국경의 강가에
길을 가로막으며 물결이 ... 끝없이 돌아온다





2002 . 1 . 11
2004 . 1 . 13   Rev.
tkhong .  letter@ang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