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버스정류장
lunatree   2001-07-14 22:30:34, 조회 : 3,357, 추천 : 571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





(이 정류장은 그냥 표지판이 하나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곳의 정경은 은행 앞에서 구두수선집 사이에 띄엄띄엄 서 있는 어두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전부이다.)



출근 시간이 임박해 서둘러 차를 닦아내는 기사들이 서넛 보이는 주차장을 지나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단지 안 도로를 사이에 두고 베레모에 검은 테 안경, 짙은 양복에 갈색 서류가방을 사선으로 맨 남자가 건너오는 나를 유심히 보며 지나간다.



남자는 거의 마흔 중년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 보니 서른 중반에 스타일이 복고적인 사람이었다.
잠시 저 남자의 직업은 무엇일까하는 생각.



남자가 앞서 건널목을 건너고 나도 길을 다 건넜을 때, 질끈 묶은 머리에 선홍빛 입술을 가진 교복 차림의 여중생이 깜빡이는 보행 신호를 보고 "앗, 씨발!" 하며 뛰어간다.



갓길로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뛰어들어오는 여중생 때문에 급정거를 하며 끽 소리를 냈지만, 그녀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건널목 양쪽으로 멈춰 서 있는 차들 사이로 껑충껑충 뛰어 길을 건넜다.



정류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에게 안겨있는 한 꼬마는 감색 잠바에 초록색 가방을 메고 두 볼이 빨갛게 얼어있었다.
동글동글한 눈의 아이는 꼭 사진으로 본 몽골 소년 같다.



폐지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가 정류장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갈 때, 반대편에서 마주오던 한 아줌마가 마침 아주 자연스럽게 종이 쓰레기를 리어카로 툭 던지고 지나간다.
아무도 개의치 않고 멈추지도 않고 보지도 못하였다.



맞은편 아파트 외벽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지만, 정류장은 언제나 건물 그림자가 드리워져 어두웠다.
음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버스가 나타날 쪽으로 고개를 돌린채,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2001 . 3 . 22

윤 화진 . lunatree.  letter@angeb.com

angeb project band






  답글달기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