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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없는 사발면
guajira  2018-02-09 17:16:53, 조회 : 64, 추천 : 18

 


스무살 시대 . 밤이 늦으면 하숙집에 안가고
화곡동 친구네 자취방에서 개겼다 . 이 방에는
냉장고도 앉은뱅이상도 김치도 없었는데
보드카와 드라이진은 있었고 . 사발면 박스랑
타바스코 소스가 있었다 . 선택의 여지가 없이
사발면에 타바스코를 촉촉 떨어트려 아침을 먹었다  
국물이 아리아리 맵고 시큼한 향으로 어울렸다
김치 없는 라면은 태양 없는 여름과 같아
우울해지는데 . 타바스코가 희한하게도
댕댕댕 빨간 종을 울려주는 것이었다
결핍은 불행도 불우도 아니다 . 결핍 대신 만나는
대상을 안아주면 되는 것이다 . 몇번 먹다보니
타바스코의 톡톡 찔러대는 맛이 가루수프랑
어울려갔다 . 입맛이란 적응하는 것이다
그후로 나는 굳이 김치나 뭐가 없어도 사발면만
훌훌 먹을 수 있었다 . 수프의 진심을 흡입하는 것
태양이 없어도 여름은 즐거울 수가 있고
더러는 어떤 사람에게서 우연한 결핍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진정성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결핍은 변화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고
김치 없는 사발면도 매혹인 것이다

비스킷이 연애편지 도시락을 배달하다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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