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연애는 길고긴 역사니까
guajira  2017-12-26 17:15:39, 조회 : 56, 추천 : 19

 



열네살 겨울 한낮 나는 내 방 창으로 건너집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 그집 정원에 나무들은
줄에 싸여있었고 . 짧게 가지를 친 관목들이
연못가에 잔잔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겨울정원은 채도를 지워낸 재빛에 갈빛 잔디와
나무에 두른 줄의 노란빛이 낮게낮게
색깔을 지워냈다 . 그 속에 그녀는 빨간
방울이 달린 털모자에 산토끼빛 스웨터를 입고
연못의 얼음 밑을 보다가 나와 시선이 맞닿았다
그녀는 깡마른 목선에 . 깜짝이야 하고
놀랄만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 빨간 꽃나무처럼 나를
보았다 . 빤히 보는 눈빛이 놀라워서 내가 창가를
물러났다 . 그 시선이 그녀의 캐릭터였다
그녀는 언제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눈빛이나 동작에 흔들림도 없었다 . 그냥
나무처럼 선 채로 바라보았다 .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털모자 방울이 흔들렸다
나는 중딩이었다 . 뭔가를 아는듯한
나이였다 . 아마도 우린 대단한 신비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마치 눈마주침이
두 외계의 신비가 충돌한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수십년이 지나고 이제 나는
그녀에게 연애편지를 쓴다 . 나는 내 연애의
선사시대로 돌아가서 문자의 빛을 주려고
한다 . 어떤 연애는 길고긴 역사니까

비스킷이 연애편지 도시락을 배달하다 9





  답글달기   추천하기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ro